[영화觀] 위대한 유산
  • 입력 : 2020. 10.30(금)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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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와 독립영화관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Save Our Cinema 챌린지 포스터.

마음이 복잡한 한 주가 지나간다. 부모님과의 대화, 끼니를 찾아 먹는 밤, 커피와 과자, 고양이 두 마리, 어제 밤의 드라마, 모니터로 볼 수 있는 영화 그리고 안부를 주고 받는 SNS정도가 일상인 나의 며칠에 생각하지 못했던 마찰음들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대체적으로 조용했던 전화기에선 나의 안부가 아닌 의견을 묻는 통화와 문자가 줄을 이었고 SNS에서는 지인들의 멘션이 꼬리를 물었다. KT&G상상마당 시네마의 폐관과 공간을 일구는 영화사업팀의 철수라는 믿기지 않는 소식 때문이었다.

한 때 몸 담고 일하던 공간이자 관객으로 애정하는 극장, 영화를 함께하는 친구들의 일터인 그 곳. 개관 이후 13년간 많은 작품들을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 자리를 통해 두근거림을 공유했던 77석의 작고 소중한 독립, 예술 영화의 마당. 대단한 단편영화제, 음악영화제, 배우기획전 등 개성과 취향의 영화제를 통해 관객들과 창작자들의 특별한 만남을 주선했던 탄생과 감탄의 공간 그리고 '돼지의 왕', '족구왕', '땐뽀걸즈', '피의 연대기' 등 한국 독립영화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열었던 작품들을 배급, 마케팅하며 독립영화가 단단하게 토양을 다져 뿌리를 내고 눈부신 피어남을 보여준 연대와 기다림의 공간이 사라진다니 믿기지 않고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땐 굴뚝에서 나는 연기였으면 하는 마음 한 켠에는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동안 숱하게 사라져간 사회공헌 차원에서의 사업 지원들, 위기의 상황에서 언제나 먼저 잘려나간 독립예술영화라는 들꽃 봉오리들의 내동댕이를 모르지 않기에 그 작은 불안은 무수한 추측을 하게 만들었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었다. 상상마당과 함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던 18명의 감독들은 호소문을 통해 연대했고 상상마당을 아끼고 사랑하는 관객들과 영화업계 관계자들 역시 SNS를 통해 상상마당 시네마와 영화사업팀을 지켜달라는 마음들을 모았다.

문화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렵게 다진 시간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누군가의 귀한 추억이 도려내지는 것은 물론이고 찬찬히 따지면 충분히 가치를 환산할 수 있는 무형의 자원을 흙더미로 파묻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꽃은 먹을 수 없어서, 번거롭고 귀찮은 아름다움이어서 귀하지 않게 취급될 수 있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에게 꽃은 축하와 위로의 마음을 담는 귀하고 선한 아름다움으로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영화산업의 거대한 너비 안에서 독립예술영화의 개화는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게 만드는 눈부신 순간이고 상상마당이라는 영화의 봉오리는 앞으로 더 아름답게 피어날 것임이 자명하다.

부디 '아깝다, 아쉽다'라는 쉬운 후회로 '안타깝다, 어쩔 수 없다'라는 무기력으로 문화 공간의 귀한 가치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문화의 역사에서 공간과 시간을 유지하는 일만큼 세월의 흔적을 아름답게 지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깨끗한 자연을 후대에 남겨주는 일만큼 공들인 문화 공간을 물려주는 것 또한 위대한 유산이라고 나는 믿는다. 문화의 상속자들은 그것의 가치를 아는 대중들이다. 대중문화의 존엄을 지키는 일은 그래서 우리 모두의 몫이다. 여전히 영화의 힘과 극장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에게 그 즐거움을 지키기 위한 수고를 함께해 주기를 부탁 드린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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