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사랑의 판타지…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어른들을 위한 사랑의 판타지…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입력 : 2018. 02.04(일) 11:49
  • 연합뉴스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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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카메라가 유영하듯 물속에 있는 집안 내부를 훑는다. 떠다니는 탁자와 다른 가재도구들, 그리고 마치 침대 위처럼 반듯하게 누워 잠자는 한 여인.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은 몽환적인 첫 장면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앞으로 꿈처럼 펼쳐질 판타지를 예고하는 듯하다.

우주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항공우주연구센터 비밀 실험실이 영화의 무대다.

이곳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는 매일 밤 정확한 시간에 눈을 뜬 뒤 씻고, 도시락을 챙겨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목에 상처가 있는 그는 어렸을 때 목소리를 잃었다. 시계추처럼 늘 똑같은 그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 건 실험실에 괴생명체가 들어오면서부터.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엘라이자는 수조에 갇힌 괴생명체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남몰래 계란을 건네고, 음악을 들려준다. 괴생명체 역시 호의에 반응하고,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엘라이자는 실험실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가 괴생명체를 해부해 우주개발에 이용하려 하자, 그를 탈출시킬 계획을 세운다.

이 영화는 어른들을 위한 한편의 동화 같다.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처럼 애틋한 로맨스를 바탕으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더욱 어른스럽게 들려준다.

엘라이자와 괴생명체는 눈빛과 손짓으로 교감하지만,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본다. 언어, 외모는 물론 같은 종(種)이 아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랑은 평범한 여인의 삶을 바꾸고, 죽음조차 무릅쓰게 하는 용기를 준다.

판타지의 거장으로 불리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물과 사랑은 우주에서 가장 강한 변화의 힘"이라며 생명과 변화의 원천인 물에 빗대 사랑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배경이 1960년대인 점이 흥미롭다. 미국-소련 간 냉전이 한창이고,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극심했던 시기다.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편견을 뛰어넘는 사랑은 시대 상황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고전압이 흐르는 충격봉으로 괴생명체에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스트릭랜드는 그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마이클 섀넌의 명연기가 더해져 그 폭력성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극 중 괴생명체는 남미의 깊은 물 속에 사는 마지막 개체로, 아마존 원시 부족이 신처럼 모시는 존재로 나온다. 물속과 육지에서 모두 숨을 쉴 수 있는 이 생명체는 인간과 비슷한 형체에 온몸이 비늘로 뒤덮이고, 지느러미와 아가미가 달렸다. 그러면서도 탄탄한 근육질 몸매는 신비로우면서도 남성미가 넘친다. 제작진은 엘라이자가 사랑에 빠져도 관객이 거부감이 들지 않게 괴생명체를 형상화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주인공 샐리 호킨스는 명연기를 보여준다. 대사 한마디 없이 섬세한 감정 표현만으로 사랑에 빠진 여인을 연기하며 관객을 집중시킨다.

영화는 주변 인물을 통해 소통에 관해서도 짚는다. 엘라이자의 '절친' 젤다(옥타비아 스펜서)는 남편과 거의 대화가 없다. 그러다 보니 남편에 대한 불만을 시도 때도 없이 엘라이자에게 털어놓는다.

엘라이자 옆집에 사는 가난한 화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는 매일 똑같은 식당만 찾는다. 그 식당 주인이 유일하게 그에게 아는 체를 하고,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는 온통 촉촉한 푸른 빛이다. 실험실의 수조, 엘라이자의 욕조, 괴생명체의 피부, 심지어 파이 속에 들어있는 젤리조차 파랗다. 푸른 색감과 1960년대의 고풍스러운 이미지는 서로 어우러져 영화를 더욱 판타지처럼 보이게 한다. 사랑이 깊어지자 빨간 구두를 신고,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엘라이자의 모습은 푸른 빛과 대조돼 더욱 도드라진다. 특히 말 못하는 엘라이자가 괴생명체에 사랑을 고백할 때, 뮤지컬처럼 화면이 전환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더욱 그렇다.

이 작품은 지난해 제74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다음 달 열리는 제90회 아카데미상에도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 등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청소년 관람 불가. 2월 22일 개봉.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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