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 (108)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 (108)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금닭이 알을 품은 형상… "이 터전 지켜내고야 말겠다"
  • 입력 : 2016. 11.01(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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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로를 따라 제2공항 결사반대 깃발들이 줄지어 펄럭이고 있는 모습(위)과 방파제에서 바라본 평화로운 마을 풍경(아래).

절차적 정당성 등 문제 많은 제2공항 건립 반대
주민들 힘합쳐 세운 학교 향후 마을서 활용 기대
상수도 수압 낮아 10여년 민원 제기… 개선 안돼



'죽어도 우리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 신산리사무소에 들어서는 문에 적혀있는 문구다. 제2공항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격앙된 감정이 함축적으로 들어있다. 이웃과 소박한 정을 나누며 500년 가까이 살아온 주민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진 상황이다. 과연 마을단위가 보유한 존재 가치는 무엇이며 정치와 행정에서 바라보는 경제적 관점 앞에 무의미한 것인지 묻고 또 묻게 된다. 죽어도 떠날 수 없다는 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내고 싶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가꾸고 살아온 신산리 주민들의 삶의 의미와 행복추구의 권리가 행정논리와 경제적 관점에 의해 유린되는 것을 묵과하지 못하겠다는 결기가 만나는 주민들에게서 느껴진다. 단순한 애향심을 뛰어넘어 마을의 존립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결사반대'라는 구호가 무서운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신산리의 역사는 다가올 미래이기도 하다.

닭이 알을 품은 신산리 풍수형상을 표현한 상징물.

신산리의 옛 이름은 '그등애'다. 문헌에 나타난 마을이름의 변천은 말등포, 말등촌, 귿등개, 그등애로 불러오다가 1700년대 후반에 풍수지리가에 의해 신산리로 개명돼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처음에는 속칭 신술목 부근에 20여 호가 살다가 식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바닷가 용천수가 풍부하고 해산물 획득 등 생활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안카름이라는 중하동지역으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기록과 족보 등에 의해 확인되는 역사이고 신산리 고인돌이 간직하고 있는 깊은 삶의 뿌리는 어떤 경제논리를 가지고도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주봉인 독자봉의 완만한 산록부분 둘선돌에 위치한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 유형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 고인돌 형식 중 비교적 이른 시기라고 할 수 있는 탐라전기(AD1~300)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계포란형 풍수를 가진 마을이다. 금닭이 알을 품은 형상을 하고 있기에 참으로 귀한 터전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래서 포근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인가? 포구 부근에서는 지대가 낮아서 한라산을 보기 힘들다. 3㎞나 되는 해안선을 따라 검은 갯바위 지대가 펼쳐진다. 곳곳에 용천수가 솟아나 대대로 생활용수 문제는 걱정 없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한영길 이장

한영길(65) 이장이 밝히는 당면과제는 물론 제2공항 반대에 있지만 지속적으로 마을발전에 저해가 되고 있는 사실을 밝혔다. "상수도 수압이 낮아서 새로 들어와 집을 짓고 살고자 하는 분들이 집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100m 만 수도관을 끌고 가면 물이 나오지 않으니 행정기관에서도 이를 알고 있기에 건축허가를 내주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십여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고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예산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수도관이 낡아서 누수가 된다면 교체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주민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원인을 알면서도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는 형국이라면 이는 소외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강희전(67) 개발위원장이 주장하는 마을 숙원사업은 이렇다. "60년대 후반, 그 어렵던 시기에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서 중학교를 세우고 교육청에 기부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폐교가 되었는데 민간인이 교육청에서 임대해 수 년 째 사용하고 있지요. 이를 우리 마을에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고생해서 만든 학교시설을 남이 임대해서 사용하는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임대기간이 끝나간다고 하니 교육청 차원에서 신산리가 활용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줘야 온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식이 통한다면 폐교된 중학교 시설 활용의 우선순위는 신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

마을 본향당과 성산기상대 기상레이더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한진규(45) 청년회장 또한 유사한 억울함이 있다고 했다. "남제주군 시절에 청년회를 중심으로 해안가에 육지화된 암반 지대에 흙으로 매립작업을 해서 마을체육공원을 만들었더니 나중에는 국가 소유이니 임대료를 내서 쓰라고 합니다. 마을 발전을 위해서 주민들이 땀 흘려 이룩한 것도 임대료를 내라고 하니 이런 황당한 경우도 있는 겁니까?" 신산리의 해안은 암반지대가 육지와 자연스럽게 잇닿아 있어서 매립이라기보다는 해안가 환경을 활용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국가가 공사를 만들어서 이런 것을 관리하는 것이야 탓할 바 아니지만 만든 주체가 마을공동체이면 임대료까지 받아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라고 하겠다. 강원보(54) 제2공항 반대 신산리 정책기획위원장으로부터 신산리 주민들의 입장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남제주군 시절에 청년회를 중심으로 매립해 조성한 체육공원.

"우선 절차적 정당성을 통해 모든 행정 행위는 이뤄져야 합니다. 처음 제2공항 문제가 발생한 것은 용역보고서를 갖고 확정이 된 것처럼 발표를 해버린 것입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이지요. 주민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연구용역을 가지고 제2공항이 추진될 것으로 확정한 것은 명백하게 절차적 정의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도지사의 자기우월주의적 관점에서 주민들과 소통이 없는 일방적 추진입니다. 초기에 주민들과 협의를 하지 못한 것은 땅투기가 무섭기 때문에 보안유지가 필요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그렇다면 주민의견은 무섭지 않고 땅투기를 더 무섭게 생각하는 도지사라는 논리가 아닙니까? 원점에서 재검토 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 닥칠 물리적인 충돌로 인해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될 것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지금은 예비타당성조사 기간이고 내년부터 기본계획수립 예산이 국회에 올라가 있다고 합니다. 국회차원에서 예산이 통과되지 않도록 촉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민주국가는 그 누구에게도 희생을 강요 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특히 '국가라는 이름으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신산리에서 새삼 다시 확인하게 된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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