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95)제주시 한경면 두모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95)제주시 한경면 두모리
제주섬의 머리… 바람 좋은 곳 해상풍력을 미래자원으로
  • 입력 : 2016. 08.02(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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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풍력단지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모습(위)과 마을회관 옥상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마을 전경(아래).

곳곳에 세워진 효자비… 한경면 중심지 자부심
해상풍력단지 활용 두모풍력해상공원 등 구상
바람개비 풍광 배경 체험장·숙박시설도 추진



제주섬의 머리는 지명으로 따지면 두모리(頭毛里)다. 서북쪽 머리에 털 달린 부분에 해당된다는 생각을 제주의 선인들은 어떻게 고정관념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땅 끝이라는 의미의 지미봉(地尾峰)이 동쪽 끝에 있고 마을 이름이 종달리(終達里)이고 보면 한라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그었다는 의미가 된다. 삼읍 시절에 제주목의 입장을 지명에 부여하였다는 역사적 사실도 있고. 두모연대(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23-20호)는 제주섬 머리의 눈에 해당한다고 할 정도로 바닷가에서 다가오는 대부분의 것들을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제주섬의 다른 연대들을 올라가 봤지만 두모연대는 덩치가 가장 크게 느껴진다. 위에 오르면 다른 마을 해변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탁 트인 느낌이 좋다. 바로 옆 포구는 소박하다. 하지만 위치가 위치니 어족자원은 풍부하여 고기잡이배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정성으로 가꾼 마을 공원에 대한 애정이 깊다.

지금부터 420여 년 전 16세기 말 제주고씨(영곡공파) 70세 후손인 고례씨가 이주해 와 정착하면서 두모리 설촌의 시초가 되어 그 후손들이 번창하여 씨족사회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성씨가 들어와 생활터전을 일구면서 마을 규모는 더욱 커져갔다. 지금의 신창리와 한원리를 모두 아우르는 대촌이었다. 여하간 위세가 당당하여 제주시 서부지역 행정 및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곳이기도 하다. 어떤 유리한 여건이 있어서 조선 중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인구유입을 가속시키게 된 것일까? 지형적 특징에 있었다. 함진 곳이 많고 오목 들어간 곳이 많아서 사람의 힘으로 땅을 파서 연못이나 음용수 시설을 만들지 않아도 물 문제가 해결되니 자연스럽게 호감가는 삶의 터전이 되었던 것이었다. 멋동산 밑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연못은 마을의 상징으로 예전에는 산간 식수 및 우마급수로 이용하던 생활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은 주변 부지와 함께 잘 가꿔서 공원으로 조성해 주민들의 휴식공간이자 방문객들이 돌아보는 곳으로 변모해 있다.

제주도기념물로 지정된 두모연대.

고창남(75) 노인회장이 전하는 두모리의 자긍심은 이렇다. "역사로 볼 때 한경면의 중심이지요. 머리 頭자가 첫째가는 곳이라는 의미니까 항상 먼저 뭔가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니까. 뭐라고 해도 우리 마을의 자랑은 예로부터 주민 화합이 잘되고, 인심이 좋고 강한 끈기가 있는 마을이라고 합니다. 효자가 많이 나오는 마을이라고 칭송이 자자했지. 곳곳에 효자비가 많아요. 언제까지 저 전통이 이어질까?" 1991년 화합선도마을로 선정된 것은 그냥 인정받은 일이 아니라고 한다.

진영호 이장

진영호(59) 이장이 설명하는 마을의 당면 과제와 숙원 사업은 너무 다양하고 진취적이었다. "두모코지 앞 바다는 제주에서 바람이 가장 좋은 곳입니다. 으뜸가는 보롬코지를 보유한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해상풍력단지가 한창 조성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화합된 결속력이 없었다면 다른 생각들을 하나로 결집시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두모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고 이 기회를 새로운 웅비의 기회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상풍력 시설이 연출하게 될 독특한 풍광을 활용한 사업들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게 될 것입니다. '두모리캠핑리조트 조성사업'을 추진하여 '바람의 마을 두모풍력해상공원'으로 발전하는 기반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이미 사업비 15억을 행정으로부터 지원받아서 두모항 동쪽 해안변 2000여 평에 체험장과 숙박시설, 음식점 등을 준비하고 있다. 해상풍력 바람개비들이 만드는 풍광을 활용하여 농어촌관광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당찬 포부다. 고창오(65) 개발위원장에게 이색적인 질문을 던졌다. "하늘에서 100억이 무릎에 떨어지면 두모리 앞날을 위해 어디에 투자하시겠습니까?" 그는 한참 생각하다가 "우리 농촌총각들에게 전부 투자해야지. 2억씩 50명에게 집을 지어 주고 재산 증명이라도 만들어야 어디 외국에라도 가서 신부를 모셔올 것 아닌가! 그래도 우리 두모의 정체성을 이어갈 저 친구들이 장가를 가서 아이를 빨리 낳아야 하는 것이 급선무거든요"라고 말했다. 웅대한 꿈을 이야기하는 마당에 진솔하게 터진 농촌 지역의 아픈 현실이었다. 효자마을이라는 명성은 마을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어도 자기 명의로 된 주택이 있어야 재산증명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을 예리하게 설명하고 나선 것이다. 삶의 문제가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을 공동체의 꿈은 더디게 이룩될 것이니까.

마을 남쪽 지역의 밭과 솔숲, 농로가 한 폭의 그림처럼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1차산업 중심의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으로 보이는 두모리에 해상풍력단지라고 하는 거대한 변화가 보롬코지 거센 바람보다 크게 몰아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강한 결속력을 발휘해온 마을공동체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역사는 곧 잠재력이기도 하다. 6차산업으로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두모의 잠재력이 깨어나 날개를 펼친 것이라 해야 한다. 마을 임원들의 공통적인 표정은 '기회가 왔다'로 함축되었다. 살리면 발전, 살리지 못하면 현상 유지. 요즘 현상 유지는 퇴보다. 두모리의 성장 동력은 해상풍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기고자 하는 주민에너지다. 참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마을회 사무실 분위기가 엄청 바쁘다. 일을 많이 하는 마을이라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보람과 성과도 크다고 한다. 두모리의 전통이 미래를 열어가는 열쇠가 되고 있다. 무엇이든 먼저 생각하고 먼저 실천할 수 있는 추진력이 있는 마을. 끊임없이 도전하며 살아온 조상들의 자부심이 혼백이 되어서도 마을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변화는 두려움이 아니라 기회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마을이 제주의 머리, 두모리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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