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 (87) 서귀포시 중문동 회수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 (87) 서귀포시 중문동 회수리
가난에 지쳤던 마을… 풍수 방위 바꿔 운명 돌려놓은 뚝심
  • 입력 : 2016. 05.24(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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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회수리의 평화로운 풍경(위)과 교통사고가 빈번하다는 회수사거리 전경(아래).

과거 경조사때 물 귀한 이웃에 동수물 길어주며 부조
"한해 교통사고 수십 건… 회수로터리 확장은 언제쯤"
공동목장 활용 텐트촌 조성·마문화 특색사업 등 구상



1100도로를 타고 중문으로 넘어가다 탐라대학교 부근 중산간 도로를 지나면 만나는 마을이다. 남쪽 대포동과 경계를 이루는 어두모루에서부터 한라산 방면으로 너벅털우둥이까지가 위아래 영역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도래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 이름 변천 과정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자원이다. 지금 동수물의 연원은 원래 1510년 동해방호소라고 하는 군사시설이 있었던 곳이다. 그 동해방호소 인근 자연촌락을 동해촌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260여 년 전에 중문리에서 분리돼 회수(回水里)로 정했다. 이 명칭을 21년 정도 쓰다가 고종 10년 1873년 도문리(道文里)로 바꿨다. 여기서 회수리(廻水里)로 바뀌는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의 진취적 사고가 녹아 있다. 전설을 요약하면 도문리라는 마을 이름을 쓰던 당시에 가난에 허덕이는 경우가 많았다. 후손들을 위해 고심하던 주민들이 존자암에 기거하던 영험하신 스님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대답은 '마을의 형세가 계축용이 팔자수(八字水)를 먹고 있으니 용 중에 가장 가난한 용이라 가난을 면치 못할 것이외다.' 서쪽에 가시머들내와 동쪽 송장이내(회수천)의 여덟 八자 모양으로 흐르는 사이에 있으니 그렇다는 뜻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극복 방안을 찾은 것이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마을 방위를 돌려놓자는 생각. 七자는 예부터 방향을 바꾸는 글자라 여겼으니 마을 밑(남쪽)에 우물을 파서 일레샘(七日泉)을 만들고 동쪽을 앞으로 하는 탑을 쌓아서 풍수에서 오는 숙명적인 인식을 바꿔버린 것이다.

마을의 역사와 애환을 함께 해온 동수물.

동쪽에 있는 동산을 앞동산이라 부르고, 웃거리를 앞거리로 부르는 강력한 후속조치를 취하자 병들어 죽던 가축들이 없어지고 어떤 집안은 우마(牛馬)가 100여 마리로 늘어나 대부분 가난을 벗어나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마치 세계지도를 180도 돌려서 보면 제주도가 이 나라의 맨 위에 놓이게 되므로 세계를 향한 일선에 있게 되는 역발상을 감행한 사람들의 땅이다. 풍수가 운명이라면, 운명이 불리했을 경우 이를 돌려놓겠다는 뚝심이 결국 마을 이름이 되었다. 돌려놓았다는 의미의 회(廻)는 마을공동체의 정신적 상징이기도 하다. 운명을 당당하게 거부해 극복해낸 영원한 정신적, 훈육적 가치관이 숨어있었다. "설촌 후 600년 세월, 마을 이름에 물 水가 들어 있다고 해서 물이 풍부한 마을이 아닙니다. 조상들은 가옥 밀집 지역에서 600m 정도 떨어진 동수물까지 가서 식수를 물허벅에 져다 먹었어요. 동네에 경조사가 나면 가장 큰 부조가 물허벅으로 물 길어다 주는 일이었으니." 김성건(77) 노인회장의 말이다. 동수물은 지금도 콸콸 솟아나고 있었다. 물허벅상은 있어도 물허벅을 진 여성들은 보이지 않고.

이창훈 마을회장

이창훈(56) 마을회장은 당면 과제이자 숙원사업을 이렇게 밝혔다. "20년 전부터 계획은 잡혀있다고 하면서 지금도 이뤄지지 않은 1100도로 탐라대 사거리에서 중문동 회전로터리까지 2차선을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입니다. 그 사이에 회수로터리는 마을 중심에 있습니다. 한 해 교통사고가 수 십 건 발생합니다. 1100도로가 2차선인데 동서로 마을을 지나는 도로가 4차선이니 기형도로 아닙니까? 운전자들이 당황하게 되는 경우라고 합니다. 마을회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건의를 해도 행정은 예산타령만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안전 문제도 문제거니와 경제적으로 중문관광단지를 연결하는 도로가 협소하여 관광산업과 관련된 농외소득 사업에 뛰어들고 싶어도 단절된 형국이 만들어진 상황이라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20년이면 국회의원 선거만 해도 5번, 그 때 마다 꼭 해결하겠다고 약속하더니 그대로다"고 분노했다. 정치 불신과 행정 불신을 동시에 보여주는 제주의 대표적인 도로다. 중문관광단지의 팽창을 정책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피해지역이 회수마을이라는 의심이 팽배했다. 35년 전 중문관광단지 초창기에 회수마을 주민들이 걸었던 기대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경제 효과 군불이 방 전체로 퍼질 것이라는 희망에 들떠 있던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준 20년 세월이었다.

회수천 벌원니 배고픈다리. 그 이름과 모습이 정겹다.

회수마을 주민들이 어떤 역사를 가졌는가? 운명과 싸워 돌려놓은 분들이다. 도시활력증진사업을 추진하며 강력하게 대항하고 있었다. 물리적 생활환경 개선이 시급한 지역을 대상으로 기반시설 및 주민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시설을 설치해 지역커뮤니티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고향을 떠난 젊은이들이 돌아와 어떤 사업이라도 펼칠 수 있는 경제환경을 만들지 않는 한 상대적 미개발지역의 박탈감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민 절반이 고령화된 현실에서 출향 젊은이들이 돌아오게 하기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관광마인드로 미래를 열고자 해도 오랜 기간 주민 간 갈등을 유발시킨 양돈장 문제 해결 또한 관건이었다. 농촌지역이라는 선입견이 먼저인 행정 감각으로 근시안적인 판단을 가졌던 결과가 이런 복잡한 현실을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2차선 1100도로가 회수사거리쯤 이르며 운행 차량과 양쪽에 주차된 농사용 차량이 엉키는 일이 벌어진다.

산록도로 위에 조상 대대로 조합 형태로 운영돼온 공동목장이 있었다. 조합원들과 마을회의 발전적 협의가 이뤄진다면 목장을 활용해 회수마을 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강성호(49) 새마을 지도자가 꿈꾸는 텐트촌 만들기나 승마장을 기반으로 하는 제주의 마문화 특색사업 등이 거론되고 있다. 30년, 한 세대 뒤에 회수마을 어린이들이 젊은이가 되었을 때를 예측해달라는 주문에 지역 원로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 어린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여 두 배는 더 성장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관적 장점과 위치적인 요인들이 만나면 충분히 현실이 되어 다가올 미래라는 것. 운명을 자유자재로 돌리는 사람들에게 무슨 걸림돌이 있을 수 있겠는가.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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