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을 피해 제주시 한림항으로 모여든 어선들. '내 사랑 한림항'을 노래했던 고성기 시인에게 섬과 바다는 고향의 다른 이름이다.

우린 작은 섬 같은 존재들
아름답기에 더 슬픈 고향
겨울에도 식지 않는 바다


그는 섬을 떠나야 섬이 보인다고 했다. 제주 밖에서도 그곳이 어디든 제주의 파란 파도소리가 들린다던 시인이다.

'가파도를 보러 갔다가/ 마라도만 보고 왔다// 종로 한복판에서도/ 일렁이는/ 모슬포 바다// 나 또한/ 작은 섬임을/ 나를 버려야 알았다.'('섬을 떠나야 섬이 보입니다'에서)

인용시를 표제로 단 첫 시집(1992)을 냈던 시조시인 고성기. 시인은 1987년 문단에 발을 디딘 후 5년 만에 시집을 묶으며 '아름답기에 더욱 가슴아픈 제주를 노래하고 싶었다'고 했다. 시집에 펼쳐진 시편들은 그래서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제주에 바쳐지고 있다.

그는 '섬을 떠난 사람들은'에서 '파도소리에도/ 옷이 젖는다'며 '일상의 먼지를 털고/ 저물어가는 창을 열면// 집어등/ 타는 불빛을/ 쫓아가는 멸치떼.'를 읊었다. 짠물에도 정이 드는 갯마을에서 자란 시인은 물빛보다 추억이 더 파랗다는 '내 사랑 한림항'을 불러내 조개잡던 보조개 소녀, 만선의 꿈을 안고 바다로 향하던 고깃배, 비양도 등대를 그림의 한 장면처럼 그렸다. 섬과 살을 맞댄 바다를 떠올리면 가난의 기억이 먼저 밀려들지만 거기엔 울밑에 자라던 호박순, 된장맛 익어가는 자리회가 있었다.

하지만 겨울에도 식지 않는 '제주 바다'는 '활화산 터트리고도/ 토할 게 아직 남아' 있다. '한라산 매미' 속 할머니의 사연 때문인 걸까. 솔숲에 가려 붉은 피만 흘렸던 4월, 할머니는 '내 아들 살려내라' 소리쳤다. 고통스런 마음을 땅속에 묻고 긴 세월 속으로 울어야 했던 이가 그뿐이겠나.

아픔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날의 '고향'은 역사의 칼날에 베인 가슴을 또한번 후벼판다. '나지막한 초가집들/ 품어 안던 쌍둥이 폭낭// 포크레인 퍼런 날에/ 뿌리까지 뽑히더니// 이제는/ 아스팔트 위/ 들깨처럼 널린 불신.'에 이르면 그 연유가 짐작된다. 빈 집을 바라보는 시인의 심정은 가시보다 더 아프다.

그래도 힘이 되어주는 건 섬들이다. 그의 시에 드러난 섬은 단순히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작은 육지'의 의미를 넘어선다. 섬은 곧 사람이다. 표제시에서 '너 또한/ 작은 섬임을/ 네가 떠나야 알았다'고 했을 때 그 섬은 '너'라는 존재를 일컫는다. 누군가의 부재는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실감한다. 곁에 있던 이가 그토록 소중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섬사람들에 대한 시인의 애정은 10년 뒤 내놓은 '가슴에 닿으면 현악기로 떠는 바다'(2002)에도 이어진다. '부서질 줄 아는 사람/ 외로운 섬/ 파도 됩니다/ 바다, 그 아무리 넓어도/ 발끝까지 어루만져/ 그리움/ 보석처럼 빛나/ 별로 뜨는/ 섬 하나/ 섬 둘'. 시집 첫머리에 놓인 '파도'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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