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열차례 열린 사려니숲 에코힐링 체험행사에서는 숲속의 작은 음악회를 비롯해 명사들의 자연치유, 인문학강좌, 북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려 숲에서의 추억을 더 각별하게 만들어 준다.

말·소 키우고 버섯 재배하던
임도 정비… 산림체험 '첫선'
느린 길 위에서 사색 잠기는
특별한 명품숲길로 거듭나



며칠 전 흡족하게 내린 비를 잔뜩 머금은 제주의 숲은 더욱 생기발랄해졌다. 연둣빛 새순을 막 튀우는가 싶던 나무들은 잠깐 사이 초록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제주의 숲은 일상의 휴식을 넘어 자연 치유와 사색의 공간으로 우리네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경쟁사회 속에서 "바쁘다 바빠"를 습관처럼 입에 단 채 종종대기 일쑤인 현대인들에게 그 무엇이 숲에 빠져들게 했을까?

문명의 발달로 삶은 한결 윤택해졌지만 온통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점령하고, 도로를 꽉 매운 자동차가 매연을 내뿜는 도시생활 속에선 맨 땅에 발디딜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봄철 어쩌다 마주하던 불청객 황사는 이제 옛 일이 됐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공습에 창문을 열고 살랑대는 봄바람을 느낄 기회마저 빼앗겼으니 말이다.

'청정 제주에서 무슨 필요가 있을까'던 공기청정기가 필수 가전이 됐을만큼 심각한 공기오염이 짓누르는 환경을 견뎌야 하는 우리에게 숲은 갈수록 더욱 각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원시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청량감, 그리고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를 폐속 깊이 들이마시는 산림욕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사려니숲 에코힐링 체험행사. 한라일보DB

제주의 숲 이야기를 하자면 도민이나 관광객 할 것 없이 손꼽는 곳이 '사려니숲'이다.

200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생물권보전지역에 위치한 사려니숲의 존재가 친숙하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9년 5월 사려니숲길위원회에서 첫선을 보인 '사려니숲 걷기대회'를 통해서다. 딱 10년 전 일이다. 자동차를 타고 겉핥기식으로 제주를 만나는 '빨리빨리' 관광이 아닌 천천히 걸으면서 제주의 자연속으로 들어가는 '느림보 여행'이 막 번지기 시작할 즈음에 선보인 사려니 숲길걷기는 여행 패턴에 적잖은 변화를 몰고 왔다.

사려니숲은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5·16도로변의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비자림로에서 출발해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오름까지 약 15㎞에 걸쳐 이어지는 길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한남연구시험림에 위치한 사려니오름의 명칭을 따 사려니숲길이라 부르고 있다. 사려니오름은 해발 524m의 북동쪽 방향으로 벌어진 말굽형 분화구를 가진 분석구이다. 사려니는 '살안이' 혹은 '솔안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에 쓰이는 '살' 혹은 '솔'은 '신성한 곳' 또는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뜻이다.



사려니숲 에코힐링 체험행사
자연치유·북콘서트·공연 등
숲에서의 새로운 추억 더해


사려니숲길 일대는 예부터 숲과 더불어 살아온 우리 선인들이 말과 소를 방목하러 다니던 길이자 화전민 마을, 나무를 베어 만들던 숯 가마터, 목장의 경계인 잣성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표고버섯 재배장에서 도내 생산량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버섯을 재배하기도 했다.

이처럼 제주 목축문화와 표고재배장을 연결하던 숲길을 숲가꾸기 사업과 산불 예방 등 공익적 활동의 필요성에다 산림문화 체험, 숲속에서의 자연치유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 증대에 따라 임도를 재정비해 새롭게 탄생시킨 길이 바로 사려니숲길이다.

해발 500~600m의 완만한 평탄지형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에 부담없는 사려니숲길은 고즈넉한 한라산자락을 마음 내키는 속도로 걷다 지치면 잠시 쉬어가는동안 '생각하게 만드는 특별한 숲'으로 다가오며 제주에 새로운 산림문화체험시대를 열었다.

도민은 말할 것도 없고 제주를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들 사이에서 꼭 들러야 할 필수코스로 자리잡았고, 명사들의 숲길 탐방도 이어졌다. 2009년 8월 열린 제5회 제주평화포럼 참가차 제주를 방문했던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한승수 국무총리가 사려니숲길을 동반 탐방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려니숲길이 명상과 치유의 숲길로 큰 인기를 끌며 탐방안내소,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대폭 확충됐다.

지난해까지 열 차례 선보인 사려니숲 에코힐링 체험행사에서는 숲 위에서 형형색색의 이야기들을 펼쳐놨다. 숲속 나무와 풀, 새소리를 배경삼은 숲속의 작은 무대에선 클래식, 대중가요, 동요 등 장르를 넘나드는 선율이 울려퍼지며 공연자와 객석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됐다. 명사들의 자연치유와 인문학 강의, 북 콘서트, 숲에서 띄우는 엽서, 숲에서 얻은 재료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품을 만드는 체험은 숲에서의 추억을 더 각별하게 만들었다.

사려니숲길이 처음 열렸을 때 탐방객들이 열광했고, 지금껏 변함없이 사랑받는 숲으로 주저없이 꼽는 데는 분주한 삶에 치인 몸과 마음을 숲속 자연과 소통하며 추스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치유효과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가 자연속에서 먹고, 입고, 마실 것을 얻으며 자급자족했듯 계절마다 새로운 얼굴을 드러내는 숲의 나무와 곤충, 새들의 노래소리가 휘젓는 생명력 넘치는 사려니숲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그 소중한 공간에서 내일(25일)부터 '열한번째 사려니숲 에코힐링 체험행사'가 펼쳐진다. 문미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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