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원의 사진에세이 '말은 말이 없다'엔 말들이 인간에게 외치는 목소리가 담겼다.

제주도 말 목장서 보낸 2년
삶을 성찰하게 만든 말세상

말과 사람, 누가 정의로운가

말(言)이 다툼의 씨앗이 되고 상대를 찌르는 무기가 되는 시대, 그는 말(馬)을 말한다. 말을 탈 줄도 모르고 말을 기른 적도 없는 그는 제주도 말 목장에서 지난 2년을 보냈다. 수시로 마구간을 찾았고 가까이서 말들을 지켜봤다. 목장주, 수의사, 말 수송업자, 마주, 마사학 교수 등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말을 공부했고 말과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이는 사람이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만 그는 말을 통해 우리네 삶을 반추했다. 말은 보다 근원적인 생과 사에 대해 성찰하게 만들었다. 동물 속에 인간학이 있었다.

"사람은 말과 반대로 입이 가장 발달했고 귀가 덜 발달되어 있다. 듣는 데 서툴고 말하는 데 익숙하다.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가장 차별화된 특징이 말이다. 말로 소통하고 생각을 교환하고 지혜를 모아서 세상을 지배해왔다. 이제는 입이 총으로 변했다."

동물 사진가인 박찬원의 사진에세이 '말은 말이 없다'는 이런 문장으로 책장이 열린다. 하루살이, 나비, 거미, 돼지에 이어 이번엔 말의 세계에서 그들이 인간에게 외치는 목소리를 듣는다.

말과 사람 중에 누가 더 정의로운지 물으며 사진에세이의 첫 걸음을 떼어놓은 그는 말이 전해주는 80가지 이야기를 100여장의 사진을 더해 들려준다. 말은 우리가 알던 것과 달리 역동적이지 않다. 위협을 느끼거나 무언가에 놀랐을 때만 뛴다. 평상시엔 풀을 뜯거나 명상에 잠겨있다. 거칠지 않다. 힘이 있지만 함부로 힘을 쓰지 않는다. 먹이를 두고도 싸우지 않는 신사다.

백마 루비아나의 사연은 그의 동물 사진 작업이 향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루비아나는 사람 나이로 치면 예순 정도인 17세의 은퇴 경주마다. 그는 루비아나를 보며 늙는다는 건 영혼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일이라 여긴다. 늘 헛헛해보이는 말의 모습을 통해선 배가 채워지지 않아 몸이 고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 가슴이 고픈 걸 알게 된다. 루비아나는 지난해 4월 눈을 감았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끝이 아닐지 모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여행지가 아닐까. 그가 인간 세상을 깡그리 잊은 채 한없이 기다려 말 사진을 찍으며 얻은 깨달음이다. 고려원북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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