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라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차수진의 '똥'

[2022 한라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차수진의 '똥'
  • 입력 : 2022. 01.01(토) 00:00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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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한 다음날 출근하는 남편이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괜찮다'고 말하려 입을 열었으나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어떤 말을 해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똥" 한 글자만 반복했다

삽화=신기영



똥.

아주 오랫동안, 그녀의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는 그것뿐이었다.

*

그녀는 작년에 같은 직장에 다니는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한 지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았으니, 신혼이라면 신혼이었다. 아내라는 이름을 갖자마자 그녀의 삶은 알게 모르게 달라졌다. 그녀는 시댁과 친정의 크고 작은 경조사에 꼭 참석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 남편의 아침 반찬은 몰라도 저녁 반찬은 꼭 준비해야 하며, 주말마다 밀린 화장실 청소와 간식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삼십 대 후반에 결혼을 한 탓인지, 더 늙기 전에 아이를 가지라는 양측 부모의 성화 또한 심했다. 그들은 나이가 더 들면 아이 키울 기운이 모자라 힘들 거라고 부드럽게 돌려 말했지만, 표정만은 단호했다. 마치 이미 너는 아이를 낳을 때 힘 줄 기운도 없을 만큼 늙어 빠졌고, 조금만 더 늦었다가는 폐경하고 말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녀의 시부모는 여자는 조신해야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일은 사회악이며 그중에서도 아들을 낳지 않는 것은 칠거지악이라고 믿는 옛날 사람이었다. 친정부모도 옛날 사람이기는 마찬가지여서 시댁 어른의 말씀이 법이고 진리라는 말을 그녀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해왔다.

그럼에도, 그 옛날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오늘날의 여성은 경제적 능력도 있어야 하고 배운 값도 해야 한다고 해서, 그녀는 일을 계속했다. 자신은 언제 어디서나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고 큰소리를 쳐왔던 남편은, 양측 부모님의 잔소리만큼은 전혀 막아주지 못했다. 그게 전통적인 장유유서 정신 때문인지, 자신은 잔소리에서 한걸음 비켜나 있기에 생긴 여유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직장에서는 남성 못지않게 바깥일을 하고, 가정에서는 여성답게 집안일을 하느라 꽤나 지쳐 있었지만, 하루에 두세 번씩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질려 정기적으로 산부인과에 다녀야 했다. 처음 들어갈 때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어갔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어쩐지 서로 머쓱해 일 미터 간격을 두고 앞뒤로 걸어왔고, 이후 부부 사이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졌다.

배란기에 맞추어 날을 받고, 그날마다 잠자리에 들고 하는 모든 일에 낭만이나 애정은 없었다. 그것은 수치와 과학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그래도 그녀는 가능한 자연수정을 원했다. 같은 부서 여직원이 인공수정의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다 결국 퇴사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따금 여직원이 부작용 때문에 입원할 때마다 사람들은 말했다. 혼자만 애 낳느냐고. 누구나 하는 일에 웬 유난이냐고. 그녀는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 결과, 몇 개월 동안 그들 앞에는 한 달에 며칠씩 밤에 하는 조금 부끄러운 숙제가 놓였다.

병원에 다닌 지 육 개월 만에 임신테스트기의 빨간 줄이 두 개로 늘어났다. 그녀는 생명을 맞이하는 기쁨보다 이제야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이라도 받아야 뭔지 모를 억울함이 가실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양가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뭘 잘했는지는 몰라도 '장하다'는 칭찬이 돌아왔다. 그제야 학창시절 해마다 받아온 '모범생 표창장'이라도 받은 양 뿌듯해졌고, 자신의 뱃속에 무언가 있다는 실감이 났다.

*

고등학생 때 참고서를 들고 화장실에 다니면서부터였던가? 그녀는 긴 지병이 있었는데 이름하여 '변비'였다. 기나긴 변비가 치질을 이끈 탓에 수술을 받은 적도 있었다. 이후 시도 때도 없이 변비와 치질이 재발을 거듭했지만 좀 쉬면 좋아지기도 하니까 그 정도는 받아들일 만했다. 요즘 세상에 한두 가지 지병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이게 다 스트레스 탓이라니까 결혼을 하면, 사람들에게 어엿한 '보통의 사회적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면 모든 게 좋아질 테지.

그러나 결혼 후에도 변비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긴 시간 동안 사방이 막힌 화장실에서 붉어진 얼굴로 혼자 끙끙대야 했다. 달라진 것은 화장실 벽 무늬 정도였다. 신혼집의 화장실 벽은 인테리어에 일가견이 있다는 시모의 취향대로 꾸며져 있었다. 친정에서는 붉고 푸른 꽃잎이라도 몇 장 그려져 있었건만. 지금의 화장실 벽은 그냥 범위를 좀 넓힌 바둑판 같았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하얗고 까만 사각 타일만 들여다보고 있기에는 장 속 찌꺼기를 배출해 내는 시간이 너무도 지루하고 공허했다. 지나치게 매끈한 타일을 보고 있자면, 어디선가 바둑알이라도 나타나 머리 위로 우수수 쏟아질 것 같았다. 할 일이 필요했다. 화장실 벽에 걸린 휴지를 둘둘 말고, 펴고, 다시 접고, 붙이고, 떼고 이래저래 장난을 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여느 때처럼 휴지를 말고 펴다가 힘을 주며 쥐어짤 때쯤, 갑자기 배가 싸하니 아팠다. 많이. 아주 많이. 임신 칠 주 정도면 벌써 고통이 느껴지나? 격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손에 말아 쥔 휴지를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고 병원에 갔다. 갓 태어난 새끼 송아지처럼 파들대는 다리로, 혼자서.

"안타깝네요."

의사가 염소 똥만한 점을 짚으며 아이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녀는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식은땀을 닦았다. 눈물을 닦아야 할 것 같았지만, 잠을 설친 눈은 그저 뻑뻑했다. 그녀는 '이유 없는' 유산의 '이유'를 찾으려고 머릿속으로 애를 썼다. 내장지방으로 아이를 눌러 대서, 지나치게 괄약근에 힘을 주어서 아이의 심장이 갑갑했던 것은 아닐까? 평소보다 휴지를 쥐어짠 시간이 좀 더 길었던 것 같은데, 아이의 뇌에게 무리가 간 걸까?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반대로 모든 것이 이유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하나의 명제가 자리잡았다.

'모든 게 내 탓이다.'

아니다. 더 정확히는,

'사람들은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였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꺼냈다면 그녀는 말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쓸데없는 생각으로 괴로워하지 말라고. 하지만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또 사람 아니겠는가? 화장실에서 울컥하는 핏덩어리가 쏟아져 나와 다시 병원에 간 건 그 며칠 뒤였다.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아선지 아이가 사라졌다는 실감은 나지 않았다. 묵은똥을 품고 있을 때처럼, 쏟았으나 다 쏟아내지 않은 기분이었다.



퇴원한 다음날, 출근하는 남편이 그녀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괜찮다.'고 말하려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똥."

남편은 그녀의 말을 잘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저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유산에 따른 휴가는 자신이 총무부서에 말해두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남편의 무심한 반응은 그녀 자신조차 방금 한 말을 무시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잠깐 동안 벌어진 그 일을 잊었다. 하루 종일 벽만 보면서, 이따금 SNS나 문자로 직간접적으로 유산을 위로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답장을 보냈다. 입을 열어 대화할 일이 없었으므로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문제는 밤이었다. 남편이 퇴근했을 때, 남편은 오늘 몸은 좀 어땠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녀는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는 아침과 똑같은 말이 나왔다.

"똥."

이번에는 남편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 남편은 그녀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한 줄 알았다. 그래서 자신이 부축해주어야 할지 물었다. 그녀는 그런 뜻이 아니다, 말이 헛나갔다고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입에서는

"똥."

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남편은 이 여자가 혹시 지금 자신을 똥이라고 욕하는 건가? 유산의 원인을 일에 바빠 가정에 소홀했던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같은 회사라 잘 알지 않느냐, 지금 결산 시기라 자신이 속한 재무팀으로서는 가장 바쁜 시기다, 이해심 많은 네가 왜 이러느냐고 반쯤 양해를 구하고, 반쯤 항의를 표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떤 말을 해도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똥."

한 글자만 반복했다. 그러더니 이내 노트를 찾아와서는 볼펜으로 몇 글자를 써 내려갔다.

- 입에서 '똥'이라는 말 밖에 안 나와. -

남편의 얼굴을 장식했던 억울하고 화난 표정이 황당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

그녀는 이번에도 병원에 갔다. 다만 이번에는 산부인과가 아닌 정신과였다. 모범생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자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정신과 의사는 일시적인 쇼크로 인한 발작 증세로 보인다고 했다. 꾸준히 내원해 상담을 받아 보자고도 했다. 그러나 병원에 가봤자 입에서 '똥'밖에 말할 수 없을 그녀는 상담을 받고 싶지 않았다. 필담이야 가능했지만, 아이의 죽음에 자신의 똥이 관련되어 있다는 비논리적인 믿음을 털어놓기도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믿음이라도 필요했다. 자신의 부주의라는 원인이라도 마련해 두어야, 다음에는 더 조심하고 더 잘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니까. 이대로 실패할 수 없었다. 온 가족이 바라는, 비록 자신도 바라는지는 모르겠지만, 귀한 아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늘 해왔던 대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 "똥"이 담긴 그 순간부터, 그녀의 생활은 엉망이 되어갔다. 회사에서 중간급에 위치한 그녀는 위로는 보고할 것이 많고 아래로는 전달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남편이 부끄럽고 황망한 얼굴로 모든 부서장과 동료, 선후배에게 양해를 구했어도 그녀가 무의식중에 입 밖으로 내는 '똥'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거래처의 견적서를 검토하거나 복잡한 수식을 사용해 대형 프로젝트의 손익을 추정하거나 기획안, 결과 보고서, 프레젠테이션 등의 문서를 명확하고 깔끔하게 작성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타 부서의 협조를 구할 때도, 후배들에게 일을 분배하고 가르칠 때도, 이 모든 상황을 보고할 때도 그녀는 긴 메일을 써 보내야 했다. 메일을 보냈다는 전화를 걸고도 그녀는 '똥'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고, 사람들은 그 한마디에 담긴 억양으로 사안의 긴급함이나 중요성을 추리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부서장이 그녀를 회의실로 불렀다. '똥'이라는 말 외에 할 수 없게 된 뒤로, 그녀가 부서장과 단둘이 회의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때 그녀와 개인적인 고민도 나눌 정도로 친했던 부서장은 딱딱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병가를 좀 내 보는 게 어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가 일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소의 두세 배가 되었고, 그래서 다른 동료들의 일거리가 두세 배로 늘어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부서장은 후련한 얼굴로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벌집처럼 촘촘하게 나뉜 파티션 안에서, 실패한 일벌이 된 그녀는 남몰래 한숨을 깊이, 들이켰다.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정시 퇴근을 했다.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집에서 밑반찬을 만들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땅콩조림과 오징어채 볶음을 내열유리 용기에 넣을 때쯤,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부서장이 위로주를 사준다고 하니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는 것이었다. 위로의 사유는 그녀의 병가였다. 끊임없는 위로의 손길에 남편은 그녀의 얼굴도 볼 수 없을 만큼 바빠졌다. 그녀는 텅 빈 거실에 앉아 휴지를 돌돌 말고 펴면서 TV를 보다 잠들었다.

다른 쪽도 순탄하지 않았다. 시가에 발길을 끊었는데, 그녀의 증세를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그녀가 유산 이후 충격이 커서 아무와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을 둘러댔다. 그러나 유교사상을 신줏단지처럼 떠받드는 시댁에서는 꽤나 괘씸해하는 눈치였다. '왜 전화를 하지 않느냐, 받지도 않느냐', '죄송하다고 사죄는 못할망정 오히려 우리가 네 눈치를 보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하는 문자가 끊임없이 도착했다. 사정을 아는 친정에서도 끊임없이 문자를 보냈다. '같이 무당이라도 만나러 가자', '애 문제고 입 문제고 다 몸이 허해서 그런 것이니 보약을 좀 지어 보자', '머리나 혓바닥에 침을 맞아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하는 내용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남편과 사이가 벌어진 것이었다. 그녀와 남편은 서로 애정을 느꼈다기보다는 마침 혼기가 차다 못해 넘쳐흐른다는 지적을 받던 차, 그나마 남은 주변 미혼자 중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한 터였다. 그러나 대화가 사라진 그들 사이에는 나눌 것이 없었다. 몸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성적 긴장감이 오고 가야 할 순간 그녀의 입에서는 흥분을 알리는 신음소리 대신

"똥…."

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왔다. 남편은 뜨악해진 얼굴로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기를 몇 번 하더니 곧 그녀 곁으로 아예 다가오지 않았다.

그녀는 회사 사람들이 '불쌍해서 어쩌나, 아직 깨가 쏟아져야 할 신혼 때인데….'라며 남편을 불쌍하게 보던 시선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잠시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막상 미안하다고 말을 하려 들면 할 수가 없었고, 또 왜 미안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물론 메모도 전하지 않았다.

침묵이 계속됐고 2세 계획도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다음에 찾아올 아이를 위해 준비했던 그녀의 결심, 즉 '다음에는 잘하자, 다음에는 화장실에서 죽을 듯이 길게 힘을 주지 말자'는 결심은 실행에 옮겨질 기회를 잃고 말았다. 남편은 그녀에게 당분간 떨어져 있는 게 서로를 위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슬그머니 시댁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이 시댁으로 들어간 후 시댁의 문자가 뜸해졌다.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기 때문에 남편의 부재가 크게 섭섭하지 않았다. 다만 잠시 두려웠다. '삶의 정석'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

그럼에도, 그녀는 그럭저럭 생활을 이어나갔다. 아직 병가 중이라 급여가 일부분 나와서이기도 했지만, 또 그녀가 친목을 다지는 데 필요한 비용이 거의 들지 않게 되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말이 없어도 생활이 가능했던 것이다.

집은 전세 기간이 남아 있었고 남편은 시댁이 편한 건지 그녀가 불편한 건지 연락 한번 없었다. 동료들 역시 연락이 없었다. 이미 그녀의 상태를 알아 배려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겠지만, 그녀가 직장에서 '똥' 한마디로 버틴 한 달여 동안 그녀 때문에 꼬이거나 늘어난 업무로 불만이 쌓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그녀를 원망하는 소리가 때로는 의도치 않게, 때로는 의도적으로 등 뒤에서 들려왔었다.

친구들은 다른 이유로 연락이 없었다. 결혼한 친구들은 남편과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바빠서 평소에도 일 년에 한두 번 연락을 할까 말까 했다. 결혼을 안 한 친구들은 전쟁 같은 직장생활을 버티느라 더더욱 연락을 할까 말까 했다. 가장 친한 친구는 실직 후 이민을 갔고 그다음으로 친한 친구는 이혼 후 연락두절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자신의 상태를 구구절절이 풀어놓을 사람이 얼마 없다는 점은 오히려 위로가 되기도 했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카드만 내밀면 되었고 거기서 이루어지는 대화래 봐야 영수증은 필요한지, 포인트는 적립할 것인지, 비닐봉지가 필요한지 정도였다. 의사 선택의 폭은 예, 아니요 둘 중 하나로 한정되었으므로 고갯짓이나 손짓만으로도 충분히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의 부재는 그녀가 삶을 이어가는 데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동안 했던 남편과의 대화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사실 공동의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들이었다. 앞으로 내 집 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자녀 계획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노후 대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회사에서 짜는 연간 일정이나 월간 일정이 좀 더 긴 단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나 할까? 그녀 일상의 대부분이었던 바깥일마저 걷어내고 나니, 그녀가 '똥'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 전이나 후나 그리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남편도 있기 전이나 후나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그녀 삶에서 중심이 될 만한 것들이 빠져나갔는데, 오히려 배수구를 막고 있던 머리카락 뭉치를 단번에 빼낸 느낌이 들었다. 비로소 흘러갈 것이 흘러가고, 마땅히 버려져야 할 것들이 그녀 속을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입은 '똥'으로 가득 찼을지언정, 그녀의 머리와 가슴과 몸은 전에 없는 청량감이 일었다. 그것은 '똥'이 그녀에게 선사한 휴식이었다.

삽화=신기영

'똥'에서 '동'으로 이어지는 단 하나의 자음 차이에 크나큰 자부심
사서는 벌떡 일어나 큰 박수… "합창단에서 '동동동'만 하면 돼요"
남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상관없었다… 당분간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

- 합창단원 구합니다. -

홍보스티커를 발견한 곳은 지역 내 시립도서관의 화장실이었다. 남아도는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도서관에 들렀다가 변의를 느끼고 화장실에 앉은 참이었다. 몇 칸 남지 않은 공용 휴지로는 말고 접고 돌릴 여분이 없어, 화장실 문 앞의 낙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서관 직원들이 관리를 할 텐데도 조악한 홍보스티커가 두 장 연달아 붙어 있었다.

처음 본 스티커는 왼쪽에 붙은 '책 읽기 자원봉사자 모집' 스티커였다. 기껏 시선을 돌렸더니 보이는 것이 '합창단원 모집' 홍보스티커라니! 누가 그녀에게 짓궂은 장난이라도 하는 게 틀림없었다.

학창 시절, 그녀는 맑은 목소리와 넓은 음역을 가진 덕에 합창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신뢰감 있는 어투 덕에 학교 행사의 진행을 맡은 적도 있었다. 교사들과 선후배, 친구들에게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이 한 단어밖에 없어진 이후로, 정확히는 그 한 단어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이후로, 그녀는 꽤 오랫동안 말을 잃었다. 지금은 자신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목을 가다듬다가도 기껏 꺼낼 수 있는 게 그 단어라는 생각에 감탄사마저 삼킨 게 넉 달째였다. 두 달간의 병가는 질병휴직으로 전환되었고, 월급도 그에 따라 더욱 줄었다. 소비가 줄어듦에 따라 생활 반경도 더욱 좁아진 가운데, 할 수 있는 말은 여전히 늘지도, 줄지도 않은 한 단어, '똥'이었다.

괜히 배와 항문에서 힘이 빠졌다. 오랜만에 '말'의 부재가 주는 손실을 떠올리게 된 그녀는 볼일이고 뭐고 축 처진 기분으로 화장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몇 칸 안 남은 휴지를 생각할 때, 다음 사람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책을 대출하고 돌아오려는데 결혼 전부터 그녀와 제법 안면이 있는 사서가 아는 척을 해왔다. 사서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살 만한 후덕한 인상을 갖춤은 물론, 누구와도 대화가 통할 만한 다양한 화젯거리를 갖고 있었다. 예전에 그녀도 한 무더기의 사람들 속에 어울려 그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아이고,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그녀는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다. 말을 할 기분도 아니었지만 무언가 말하고 싶어도 지금은 할 수 없었다. 어색하게 돌아서려던 그녀를 사서가 다급히 붙잡았다. 그녀는 왜 이러나 싶어서 걸음을 멈추고 어정쩡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활동하는 합창단에서 단원을 구하거든요."

그는 비장하게 말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자세히 보니 사서의 얼굴 안에는 뭔가 반가우면서도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홍보스티커도 붙였는데, 세상이 험하다 보니 사람들 연락이 통 없더라고요. 무슨 장기매매 광고처럼 보듯 하면서…."

그녀는 '우리 아파트에 홍보스티커를 붙이게 도와 달라는 뜻인가?'라고 생각하며 고개만 대충 주억거렸다. 그런데 그는 뜻밖의 말을 했다.

"혹시, 지원하실 생각 있으신지 해서요."

"똥?(네?)"

그녀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가 당황한 나머지 금세 입을 닫았다. 그는 고개를 잠시 갸웃했지만, 곧 숨도 쉬지 않고 남은 말을 뱉었다.

"목소리가 꽤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전에 대화할 때. 왜 어린 시절 합창단에서 알토로 꽤 오래 활동하셨다고 했잖아요. 그때 노래 몇 소절도 잠깐 들려주시고요."

그녀는 하마터면 큰 소리로 '똥'을 외칠 뻔했다. 나한테 대체 왜 이러냐는 뜻을 담아서.

*

"하아."

그의 한숨소리가 빈 도서관에 울려 퍼졌다. 그녀가 갖고 있던 펜과 메모장으로 자신의 사정을 설명한 뒤였다. 참으로 오랜만의 고백이었다.

- 저는 지금 '똥'이라는 말밖에 못 합니다. 생각이나 행동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언어적 문제가 심각해서 병원에서 검사도 받았습니다. -

그는 재차 확인했다. 진짜냐고. 합창단이 하기 싫어서, 그런데 거절이 힘들어서 이러는 거면 거짓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그녀에게는 '나는 멀쩡하지만 그냥 노래가 하기 싫다'는 거짓 문장을 쓰는 것이나 '나는 하고 싶지만 노래를 할 수 없다.'는 진실한 문장을 쓰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사실 직장을 가지고 나서는 바쁜 와중에 합창이든 춤이든 취미생활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먹고 자고 쌀 시간도 부족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똥'이라는 문제만 없으면 뭐라도 하고 싶었다. 아니,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남아도는 게 시간이고, 몸도 전혀 피곤하지 않은 데다, 충분한 휴식 끝에 이젠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뚱이나 둥이나 또로롱 같은 건 돼요?"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걸 시도해 보라고 말한 사람도 없었다. '응'이나 '아니'나 '안녕?'이나 '잘 자'나 '밥 먹어'나 '밥 차려 놨어.' 같은 말을 해보라고 한 사람은 있었지만 이런 별 의미 없는 말을 해보라고 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정말 머리카락부터 발톱까지의 모든 힘을 짜내어 힘들게 한마디를 뱉어보았다.

"또…ㅇ. 띠. 오. 옹"

그가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말했다.

"동만 돼도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거 같은데."

해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꽤나 오랜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목젖이, 손과 발이, 배가 미세하게 울렁거렸다. 메스꺼웠지만, 기꺼웠다. 머릿속에서는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말이 거듭 떠올랐다. 그것은 아마 꽤나 오랜만에 타인과 긴 대화를 해서 생긴 메아리였을 것이다. 텅 빈 곳에서 소리를 지르면 목소리가 울리듯이,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말(※주: 아무나를 대상으로 하는 '포인트 적립하세요?' 따위의 매뉴얼을 읊는 말 말고, 오롯이 그녀를 대상으로 한 진짜 '말'을 뜻함)이 비어 있던 그녀의 귓가에는 그 말 한마디가 울리고 또 울려댔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장시간 동안 계속되던 메아리는 이내 '해보자.'라는 문장으로 바뀐 채 그녀 자신의 목소리가 되어 울리기 시작했다.

*

그녀는 그날부터 된소리를 예사소리로 바꾸어 입으로 내뱉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그래서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그녀의 입은 늘 동그랗게, 약간 벌어져 있었다. 침이 마르고 턱이 아파왔지만 상관없었다.

'똥'에 엮인 뒤부터,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녀는 가능한 한 입에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혼자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자기도 모르게

'똥'

이라는 한마디가 나오면 자신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똥과는 다른 말을 하기 위해. 단 한 음소라도 다른 말을 하기 위해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똥! 똥? 또오오오오옹."

자신과의 싸움이란 게 이렇게 힘든 거였구나. 누구나 가는 상식적인 길, 허용될 수 있는 길, 혹여 실패해도 핑계 댈 수 있는 길만 걸어왔던 그녀에게는 이런 싸움이 처음이었다. 너무도 하찮아서, 실패하면 바보가 되는 일. 잘 해봐야 본전인 일.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 일.

그래서 오히려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오롯이 자신과 싸웠다. 자신의 성대와 싸웠고 자신의 혀와 싸웠고 자신의 입천장과 싸웠다. 앉아서도 싸우고 서서도 싸우고 누워서도 싸웠다. 스스로에게 짜증도 냈다가 달래기도 했다가 다시 화를 냈다가 안쓰러워도 했다가 응원도 했다. 자신과 그렇게 길게 대면한 적이 언제였던가? 있기는 했던가?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동."

한 달하고도 보름째였다. 그녀는 제 뺨을 꼬집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미묘한 소리의 차이. 그러나 그녀는 알았다.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였으니까. 몇 달 동안 듣지 않다가 한 달 보름 동안 질리도록 들어온 자신의 목소리였으니까. 대학에 합격했을 때보다 기뻤고 직장에 들어갔을 때보다 기뻤다. 결혼을 했을 때는 별로 기쁘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대상조차 될 수 없었다.

그녀는 말의 높낮이도 바꾸어보고 빠르기도 바꾸어 보았다. 기쁜 마음에, 내친김에 '동도로 동동'도 해보고 싶었지만 아직 무리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동'만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환하게 웃으며 그녀는 그동안 몸안에 쌓아둔 저주를 전부 토해내듯 큰 소리로 '동'을 외쳤다. 그날 그녀의 아파트 동 주민은 알 수 없는 '동동동' 소리에 아파트 벽에 균열이 간 것은 아닌지, 귀신이 씻나락을 까먹는 것은 아닌지 공포에 떨어야 했다. 501호에 사는 말 없는 새댁이 하루 종일 그렇게 큰 소리, 오직 한소리로 떠들 줄이야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나아가, 그녀는 생각했다.

'기왕 한 거, 호흡을 좀 길러 볼까?'

발음은 같지만, 새로운 길이의 소리가 열린 창을 넘어 아파트에 울려 퍼졌다.

"도옹. 도오오오오오오오옹. 도오옹."

*

그게 뭐라고.

사람들은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똥'에서 '동'으로 이어지는 단 하나의 자음 차이에 크나큰 자부심을 얻었다. 마법이라도 부린 기분이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그녀가 처음 걸음을 내디뎠을 때 느낀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처음 '엄마'라는 단어를 발음했을 때 느낀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하지만 그때 그녀 앞에는 그녀를 칭찬하고 축복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오직 그녀만이 자신을 칭찬하고 축복하고 격려했다.

그녀는 빌렸던 책을 돌려주러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사서 앞에 꼿꼿이 섰다. 사서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주 오래 연체된 책을 받아 들고서, 사서는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도 자신만만하게 사서를 바라보았다. 곧 사서의 시선에서 묘한 기대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동~~~동~~~도옹~~~."

사서는 벌떡 일어나 큰 박수를 쳐주었다. 한 사람의 기립박수. 성인이 된 이후 그녀가 내딛은 첫 자율적 걸음마에 대한 첫 자율적 응원이었다. 그 장소가 도서관인 것은 심히 문제였지만. 하마터면 그녀는 사서의 손을 맞잡고 함께 통통 튀어 오를 뻔했다.

"합창단에서 마침 아카펠라를 시도해보려고 하거든요. 베이스 기타 같은 역할을 하면 됩니다. '동동동'만 하면 돼요. 악보는 읽을 줄 알죠? 모르면 제가 불러드려도 되고요."

사서는 그녀에게 합창단원의 모임 시간과 장소를 적어주었다.

그녀는 안다는 뜻으로,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동'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여기 오기 전 혼자만의 법칙을 정했다. '네'는 '동동', '아니요'는 '똥'이라고 말하기로. 곧 사서에게는 메모를 전할 생각이었다.

사서는 화장실의 홍보 전단부터 떼러 가야겠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노래를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자신을 믿어주는 사서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사실 진짜 믿어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합창단은 대체 무슨 노래를 하는 것일까? 영어로 된 노래일까? 불어로 된 노래일까? 한국어로 된 노래일까?'라고 뒤늦게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어차피 '동'이라는 발음은 한국적으로 하나 미국적으로 하나 프랑스적으로 하나 '동'이었고, 자신이 맡을 파트가 생긴 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기뻤다. 오랜만에 찾아온 자신만의 '역할'이었다.

*

연습 장소는 도서관 3층에 딸린 작은 교실이었다. 원래 독서지도사 수업이나 동화 읽기 수업 등을 하는 곳이었는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므로 보통 수업이 없었다. 그녀가 교실에 들어서자 자유롭게 자신만의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복장도 다양했고 태도도 다양했다. 당연히 성격도 다양해 보였는데, 소심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범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자유분방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의 바르고 깐깐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노래를 들어보면 보이는 것과는 또 달랐다. 모두 제각각 다른 노래를 했는데, 깡마른 여자가 웅장하고 끈적이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두툼한 남자가 청아한 소리로 스타카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정장을 입은 사서는 한쪽에서 피아노 반주를 해가며 '우우우' 하는 소몰이형 창법으로 느린 템포의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이제 시작할까요?"

피아노를 멈추고 사서가 말했다. 사서는 그녀를 단원들에게 소개하고는 악보를 나누어주었다. 그녀가 '똥'과 '동'밖에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 아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녀는 고개만 꾸벅 숙여 인사했다.

"이게 뭐야. 왜 온통 '동동동'이야?"

단원 하나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가사가 오로지 '동'만 쓰여 있었다. 그녀는 악보와 사서를 번갈아 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사서가 미소를 짓더니 이내 질문한 단원을 향해 대답했다.

"연습용이야. 다들 자기의 음정이 정확하게 맞을 때까지, 화음이 완성되기까지는 무조건 '동동동'으로 갈 거야. 박자 잘 지키고. 멋 내느라 늘어뜨리지 말고. 먼저 여자 단원 연습해봅시다!"

입으로 기타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었고, 입으로 드럼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었으며, 입으로 트럼펫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그들 사이에서 자신의 소리를 내었다. 낮고 높은 '동'이 교실에 울려 퍼졌다. 각기 틀린 음을 교정하고 박자를 맞추는 사이 시간이 금세 흘렀다.

그녀는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동'을 불러댔고, 그 위에 사람들의 '동' 소리가 한 겹, 두 겹 쌓이며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냈다. 사서가 직접 작곡한 노래라는데, 멜로디가 좋아서 그런지 가사가 없어도 참으로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사서는 그녀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저음을 좀 더 연습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번엔 제대로 된 노랫말도 얹어질 터였고 아마 음악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 음악에 그녀도 속할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벅찼다.

연습이 끝나갈 무렵, 그녀에게는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다음 연습 때까지 '둠'을 연습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쉽게 이루어질 리 없는 일이었지만, 못하리라는 법도 없었다. 이미 한 번의 성공을 이루어낸 그녀였다. 그녀는 시간이 아무리 길어진다 해도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연습이 끝나고서야 사람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처음인데 힘들지 않았냐고, 낯설지는 않았냐고. 악의 없는 웃음 속에 무언가를 함께 해낸 사람에 대한 동료애가 느껴졌다. 그녀는 웃으며 노래하듯 대답했다.

"동~."

그녀의 뒤를 따라오던 사서도 말했다.

"동!"

"뭐야, 새로 만든 유행어야?"

사람들이 웃었다. 청량한 웃음이 떠도는 상쾌한 공기 속에서, 그녀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발음할 수 있는 단어는 단 두 가지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합창단을 나가야 할지도 몰랐다. 상관없었다. 합창단을 나가도 노래는 계속할 수 있으니까. 오늘 부르는 노래는 그녀가 부를 수많은 노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남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남달라도 상관없었다. 당분간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다시 한번 그녀가 자신의 배에 손을 얹고 묵념하듯, 엄숙하게 첫 음을 짚어 보았다.

"동(童)."

비로소 똥 속에 파묻혔던 아이가 세상 밖에 나온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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