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감/ 시 김미경

[2022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감/ 시 김미경
버티다 보면 다른 것들이 훨씬 더 견딜 만해질지 모른다
  • 입력 : 2022. 01.01(토) 00:00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시 당선 김미경

녀석은 주로 빛이 어스름할 때 또는 밤중에 그리고 가끔은 흐린 날에 물었다.

나는 가슴 위에 놓인 녀석의 무게를 견뎌내야 했다. 녀석을 위해 책상에 먹이를 놓아두었다. 녀석이 뭘 먹고 사는지, 뭘 좋아하는지를 알아내야 했으니까.

식성은 의외로 까다로웠다. 살아있는 내 피 외엔 건드리지 않았다. 배 밑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나의 공포감을 눈치 채고 그것이 녀석을 신나게 한 게 분명했다. 붕 뜬 채 내가 나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녀석은 인류 친척들과 오래 살아 그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배가 불러 만족하면 손가락에 침을 묻히더니 불멸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스스로를 가둔다며 책더미 속으로 기어들었다. 녀석은 음지에 숨어 지내야 했다. 가끔 마주치는 것조차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으니까.

아니 녀석에게 자극받으면 늘 반응하는 우리랑 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끈적이는 몸을 비벼대며 혼자 있는 것을 필사적으로 반겼다. 아무런 저항 없이 부드럽게 우리를 뚫어 내부를 천천히 비워내는 것이 녀석의 목표일지 모른다. 마지막까지 녀석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두고 먹어두고 그래야 녀석에게 영원히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나도 녀석처럼 꼼짝 않고 책장 이음새에 기대서 잠을 자 두는 게 좋겠다. 끈질기게 버티다 보면 다른 것들이 훨씬 더 견딜 만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잠깐 내린 눈송이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뛰어다닌다.

33년째 묵묵히 신춘문예를 운영하고 있는 한라일보사에 감사드린다. 내 시가 부족한 만큼 심사위원들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 음악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진용진 선생님과 시의 집을 짓는 김기호 대목 그리고 '시와몽상' 시우들께 감사드린다.

▷1964년 제주 출생 ▷'시와몽상' 동인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791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