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수의 목요담론] 하영올레의 교집합(交集合)은 '물'이다

[오경수의 목요담론] 하영올레의 교집합(交集合)은 '물'이다
  • 입력 : 2021. 12.09(목)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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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세 개의 하영올레 코스 중 어느 하나를 걷는 것이 일상이 돼버렸다. 집을 나서는 순간 하영올레길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나태주 시인이 길가의 풀꽃을 ‘자세히 보니 예쁘다. 오래 보니 사랑스럽다’라고 노래했듯이, 하영올레길을 자주 걷다 보니 내 고향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처럼 하영올레길에 심취하다 보니 어느새 매니아가 됐다. 지인들을 초대해 함께 걷기를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영올레 해설사가 돼 민간홍보대사(?) 역할까지 하게 됐다.

하영올레는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나는 제주올레길 26코스를 완주한 여세를 몰아 아내와 함께 하영올레를 걷기 시작했다. 어릴 적 동네 길을 걷던 추억을 되새기며, 60여 년 전 친구들과 뛰놀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주 걷는다. 시간이 흐른 탓에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지는 않지만, 하영올레길 살피다 보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이 꽤 남아있어 더 심취해지는 것 같다. 서귀포 중심가의 속살을 구석구석 선보이는 하영올레길은 볼거리, 먹거리가 많아 흥미롭다는 칭찬이 자자하다. 또한, 용천수 물길을 따라 이어진 공원 속을 거닐며 서귀포의 역사와 문화 스토리에 젖어 들다 보면 인문학 기행의 정수를 맛보는 즐거움으로 가득해진다.

정방폭포 근처 서복기념관은 제주와 중국과의 역사적 발자취가 숨겨져 있어 과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또 자구리 해안은 이중섭 화가의 발자취가 남아있으며, 천지연폭포 옆 칠십리 시(詩)공원에는 한기팔 시인 등 서귀포 태생 시인들의 시비(詩碑)가 줄지어 있어 예술과 문화의 깊은 맛도 느낄 수 있다.

지장샘 근처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하영올레길을 숱하게 다녔다. 한번은 서쪽 새섬으로, 또 한번은 동쪽 자구리 해안으로 걷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길이 이제는 하영올레로 당당하게 변신한 것이다. 정방폭포로 흘러가는 지장샘과 산지물, 천지연폭포로 향하는 솜반내의 물줄기는 지금도 여전히 시원한 소리를 뿜으며 원도심을 적시고 있다.

가끔 바닷가에서부터 거꾸로 물의 원천(源泉)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서, 상행하효(上行下效 :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와 상선약수(上善若水 : 최고의 善은 물과 같다)의 참뜻을 음미한다. 게다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했듯이 물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지장샘-천지연폭포-정방폭포를 잇는 선(線)은 트라이앵글처럼 '물의 삼각형'을 이뤄 서귀포 속살을 에워싸고 있다. 이런 하영올레를 걸으면서 도시와 자연의 절묘한 융복합의 현장을 몸소 느껴본다면 소확행(소소한 확실한 행복)을 넘어서 대확행(크고 확실한 행복)을 안겨줄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누적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하영올레를 걷으면서 활력을 되찾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오경수 제주미래가치포럼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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