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건강&생활] 늙어감의 기쁨

[이소영의 건강&생활] 늙어감의 기쁨
  • 입력 : 2021. 10.27(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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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 늙어감, 혹은 노화. 우리나라 말로 노인학으로 소개된 이 분야는 암이나 신경과학 등과 함께 생명과학계에서 많은 연구가 이뤄지는 소위 인기 분야 중에 하나다. 정신과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신경정신’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택한 전임의 시절, 노인학의 선구자 중에 한 분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시간은 나에게 노인학의 재미를 알려준, 결과적으로 내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친 강의로 선명히 기억한다.

선사시대는 말할 것도 없이, 대략 6000년 정도의 인류 문명의 역사의 대부분, 지구에는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살지 않았다. 15세기까지만 해도 4억명가량에서 정체돼 있던 인구는 18, 19세기를 거치며 급격히 불어났는데, 20세기 초 15억명 정도에서 지난 100여 년 간 네 배로 늘어나, 지금 현재 지구에는 60억명 정도의 사람이 산다고 한다. 이에 더불어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그러나 우리가 종종 잊곤 하는 사실은 불과 100년 전까지도 인류의 평균 수명이 채 50살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노인’이라 일컬어지는, 대략 만 65세 이상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존재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역사를 통틀어 이 지구상에 살다 간 ‘노인’을 모두 모아 놓으면, 99%는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어린이, 청소년, 20~40대의 성인이 인류 역사의 유구한 시간동안 존재해 왔지만, 노인이야말로 인류의 역사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라는 점, 이것이 나에겐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만큼 우리는 노인의 생리와 병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은 그만큼 새로운 의학 탐구의 영역이 확장됨을 의미한다. 이렇게 신나는 분야가 또 있을까?

노화와 관계돼 일어나는 수십 수백 가지의 생리적 변화, 대략 신체의 모든 장기의 모든 기능이 약화 된다는 내용으로 채워진 그 강의가 끝날 무렵 나는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지금까지 나빠지는 기능을 설명을 하셨는데, 나이가 들수록 좋아지거나 강화되는 기능은 없습니까? 그 교수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런 것은 안타깝지만 없는 것 같다” 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분이 본래 내과의였으므로 그런 시각을 가졌던 것 같다. 좀 더 공부를 해 보니, 나이가 들며 좋아지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인격’이다. 인격엔 몇 가지 척도가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감정적으로 안정적이 되고, 더 외향적이 되며, 더 온화하고 열린 마음을 갖게 되고, 더 양심적이고 성실해진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 하나둘 보이는 흰머리에 당황하다 생각해보니 나도 어느덧 흰머리가 나는 게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됐다. 의사나 연구자로서가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 늙어감에 대해 생각해 본다. 늙어감이란, 몸은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약해질지언정 점점 더 나은 인격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멋진 기회다. 그리고, 내가 오래 살면 살수록, 나야말로 지구상의 새로운 존재, 진정한 신인류인 것이다. <이소영 미국 메릴랜드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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