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7)바닷가에 작업실 구하기

[황학주의 제주살이] (7)바닷가에 작업실 구하기
  • 입력 : 2021. 10.26(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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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간 마을에서는 자연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는 일이 잦다. 나는 볼일 때문이든 아니든 일단 중산간마을을 내려가면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온다. 때론 해맞이해안로를 지나 신산환해장성로까지 줄곧 달리다 걷기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산책을 한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바닷가에 작업실을 하나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종종 해녀들의 탈의실로 쓰이던 낡은 건물을 볼 수 있다. 나는 비교적 집에서 가까운 해맞이해안로 바닷가, 정말 특별한 느낌을 주는 곳에 빈 해녀탈의실 두 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해녀탈의실 중 하나를 얻어 개인 작업실로 꾸미고 싶은 바람을 가지게 되자, 자주 그 근처 바닷가에 가 앉아 있는 일이 늘었다. 찰랑거리거나 부서지는 파도를 옆에 둔 옛돌집 건물, 구석구석 오랜 세월의 풍파와 흔적을 안고 있는 해녀탈의실이 마음에 들어와 앉는 것을 오래 견디고 있었다. 그건 대충 떠올려지는 그런 집이 아니다. 그리고 괜찮다면 그 두 곳 중 망망대해에 붙어 있는 것보다 작고 예쁘장한 포구에 앉아 있는 해녀탈의실이 보다 덜 외롭고, 아내와 쓰기에도 더 맞춤해 보였다.

어느 날 나는 전화를 걸어 용무를 밝히고 해당 관할 어촌계를 찾았다. 그리고 어촌계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끝에 정기회의가 열릴 때 의논해 가부를 알려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한 달쯤 후 그렇게 수조(水槽)가 딸린 큰 공간 하나와 작은 공간 두 개가 더 있어 쓰임새도 많게 지어진 해녀탈의실을 5년 계약으로 임대하고, 그곳은 간단한 리폼 공사를 거쳐 각자의 방이 있는 우리 부부의 작업실이 되었다. 한 시인의 감귤농장에서 안 쓰는 나무귤상자 100개를 얻어와 그걸로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는 책장을 벽면 하나에 만들고, 남은 걸로 두 개씩 이어붙인 의자와 보관함 등을 만들 수 있었다. 올레길이 지나는 곳이기도 해 귤상자를 이어붙이고 단단한 목재를 보강한 긴 의자 하나는 잘 대패질해 올레꾼들이 앉을 수 있게 바깥에 두었다. 그리고 한 지인의 종달리 창고에서 놀고 있는 두껍고 시커먼 철제로 된 옛날식 난로를 얻어와 연통이 밖으로 난 난방시설을 갖추었다.

해안도로에서 바다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어간 암반 위 작업실 문 앞쪽엔 몇 척의 배가 매어져 있고, 뒤쪽으로는 망망대해다. 거기에다 자연포구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방파제가 250걸음 정도의 길이로 작업실에서부터 뻗어나간다. 수평선에 분홍 노을이 걸리는 날, 긴 노을 언저리에서 하루 일과를 맺고, 그 방파제에 나가 오른손에 모자를 벗어든 채 나는 미동도 없이 서 있어 본다. 오랫동안 바다를 일터로 삼은 어부들과 해녀들이 드나들었던 굴곡진 해안은 나에게 생각지 못했던 터전을 빌려주고, 바다 앞에서 보낸다는 것의 의미를 묻기도 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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