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수의 문화광장] 경계는 관계를 해친다

[박태수의 문화광장] 경계는 관계를 해친다
  • 입력 : 2021. 10.26(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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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 윌버는 "우리가 살면서 괴로운 것은 경계를 짓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와 남 사이에 구분을 짓기 때문에 서로가 불편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부가 함께 살면서 남편은 자식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자라기를 바라고, 아내는 철저하게 해야 할 것은 하고 가릴 것은 가리며 자라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로서 엄마와 아빠가 각기 다른 관점으로 자식을 키우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갖는 게 경계이다.

이러한 경계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 구분을 지으면서 살기 때문에 점점 단단하게 개인의 성품으로 굳어져 간다. 우리는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선생님과 학생, 사장과 직원 등 무수한 대상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부여하며 경계를 짓는다. 어찌 보면 인생 자체가 경계를 짓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사는 동안은 경계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깨달음을 통해 생명이 다하기 전에 경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를테면 '나'와 '나 아닌 것'이 서로 다름을 알아차리되 그 다름에 얽매이지 않거나 그 경계를 넘어서면 된다.

그러나 서로간의 다름을 알아도 괴로움이 경계로 인한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냥 이래서 괴롭고, 저래서 괴로운 것이라고 막연하게 알 뿐이다. 아마도 지난 추석명절을 보내면서 경계로 인한 불편함이 가장 많았던 사람은 집안의 며느리일 것이다. 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경계는 업으로 맺어진 것이라고나 할까? 음식을 준비하는 며느리의 입장을 보자. 며느리가 음식을 만들다가 시어머니로부터 잔소리를 들었다. 그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니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이지만 그 다음부터 며느리의 마음은 온통 음식 만드는 일보다 시어머니에게 가 있다. 코로나 핑계로 오지 말 걸 왔다고 후회한다. 그 마음이 남편에게로 전달된다. 별일 아닌 것에 화를 낸다. 이를 눈치 못 챈 남편은 어머니에게 화를 낸다. 즐거워야할 명절이 그만 썰렁하게 변해버린다.

일상생활에서 부부의 경우는 더 잦다. 부부가 손잡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경계가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따뜻한 기운이 서로를 타고 흐를 때 두 사람 간에는 경계가 사라진 상태다. 그러다가 '당신 생각이 맞아, 틀려'라든가 '당신 말이 옳아, 글러' 라고 구분을 짓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경계가 일어나고 이전에 지은 경계와 더불어 더 단단해지면서 자칫 평생을 후회할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러한 결과는 부부가 서로 짓고 있는 경계를 알아차리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경계의 뿌리는 '나'라고 하는 '에고'에서 출발한다. '나'와 '너'가 강하게 작용하는 한 우리의 삶은 경계로 인한 갈등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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