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ED 지상전] (12)고윤식의 '오렌지카펫 #1'

[갤러리ED 지상전] (12)고윤식의 '오렌지카펫 #1'
오렌지빛 융단 낭만 아닌 제주 감귤 농업의 '오늘'
사진 활용 직접적 표현… 유토피아 상실 근원 탐색
  • 입력 : 2021. 08.01(일) 13:26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그가 독일 자브리켄 예술대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해는 2017년. 서울에서 활동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의 발길은 고향으로 향했다. 10년 만에 마주한 제주는 어제의 모습이 아니었다. 감귤의 영향이 컸다. 부모님의 일손을 도왔던 어릴 적 감귤밭은 그에게 낙원 같은 곳이었지만 세월의 파고를 넘으며 고통스런 삶의 현장으로 바뀌고 있는 걸 목격했다. 가격 폭락 탓에 3월까지 감귤나무에 열매가 그대로 매달려 있거나 산지 폐기 정책으로 속절없이 버려지고 있었다. '오렌지카펫'이란 제목은 오렌지빛 융단이 깔린 낭만적인 풍경이 아닌, 생명력을 잃은 주홍 감귤이 카펫처럼 과원을 뒤덮고 있는 처참한 상황을 비유한 표현이다.

한라일보 갤러리 이디(ED)의 'MZ 아트, 뉴 오픈' 기획전에 초대된 고윤식 작가의 출품작 중 하나인 '오렌지카펫 #1'에 그런 사연이 있다. 초록 풀잎과 대비된 채 썩어가는 감귤이 화면을 채운 작품으로 사진 작업을 이용한 포토 믹스미디어 방식으로 드러냈다.

회화 작업을 해온 고 작가가 사진을 매체로 택한 건 좀 더 직접적이고 실감나게 제주에 대한 느낌을 담아내고 싶어서다. 360도 카메라를 구입하는 등 직접 촬영한 사진을 활용했다. 사진과 디지털 기술을 붓과 물감, 캔버스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냈다. 무엇을 보여줄지 우선 생각하고 재료나 도구는 그 뒤에 따른다는 작가의 말에서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는 작업 열정을 짐작하게 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토끼, 거북이 등은 동심을 상징한다. 그것들은 제주가 유토피아처럼 여겨졌던 유년의 기억을 소환하는 동시에 현실의 고단함을 부각하는 장치다. '갤럭시', '홀' 연작 등 갤러리 이디에 함께 나온 작품을 포함해 고 작가는 지난해부터 제주의 오늘을 묵묵히 기록하는 작업으로 상실감의 근원을 탐색하고 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6947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