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행복 산업의 호황에 연민과 공감은 없다

[책세상] 행복 산업의 호황에 연민과 공감은 없다
에바 일루즈 등 공저 '해피크라시'
  • 입력 : 2021. 06.18(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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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강박 사회 위계 정당화
삶의 혁신 정의와 앎에 있어


당신이 누군가에게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면 상대는 무슨 생각을 할까. 현대 사회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다"는 뜻이다. 행복은 우리 삶에서 건강하고 정상적이며 제대로 돌아간다는 걸 증거하는 최종적인 기준으로 통하고 있다. 어느새 행복은 규범이요, 행복한 개인은 정상성의 원형이 되어버렸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에바 일루즈, 베를린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에드가르 카바나스는 ‘해피크라시(HAPPYCRACY)'에서 오늘날의 '행복 강박'을 비판하고 있다. 행복이라는 절대 명령이 우리 삶의 방향과 행동 방식을 지휘하고 있는 현실이 바람직한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두 저자는 힘든 상황에서 긍정적 요소를 찾는 일이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역경을 마주하는 좋은 태도이고 성찰과 반성을 거치기만 한다면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가 생기는 지점은 긍정성이 일종의 독재적 태도가 되어 불운과 무기력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전가하면서부터다. 각자가 고통을 책임져야 하는 세상에는 연민과 공감이 들어설 여지가 거의 없다.

이들은 부정적 감정과 사고를 억누르면 사회의 암묵적인 위계를 정당화하기가 수월해지고 특정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를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유의 억압은 고통을 마땅치 않은 것으로 폄하한다. 부정성은 비생산적이니 생산적인 긍정성으로 바꿔야만 한다는 압박은 분노, 불안, 번민 같은 감정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 나아가 쓸모없고 무익한 정서로 여긴다.

행복은 시장에서 개인의 발전과 역량 증진을 평가하는 잣대라는 점에서 명실상부한 '상품'이 되었다는 저자들은 '행복 장사치'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대신 부정적 감정의 중요성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변화의 의지, 기성 질서에 대한 거부는 분노나 회한 같은 감정에 기대는 부분이 많다. "행복 산업은 삶을 구성하는 조건들을 파악하는 능력을 교란하고 흐려놓고 있다"고 밝힌 그들은 다음의 결론에 다다른다. "삶을 혁신하는 도덕적 목표로 남아야 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정의와 앎이다." 이세진 옮김. 청미. 1만65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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