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먼 나라 독일 무대서 달래는 제주4·3의 넋들

설날 먼 나라 독일 무대서 달래는 제주4·3의 넋들
코드 마이예링 '바다의 곡' 다름슈타트 음대서 세계 초연
허영선의 시 '무명천 할머니' 모티브로 비대면 추념 공연
재독 피아니스트 한가야 등 출연 제주 현대사 아픔 보듬어
  • 입력 : 2021. 02.09(화) 16:22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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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곡' 작곡가 코드 마이예링. 3·1운동에 이어 제주4·3을 소재로 한국 역사를 그린 두 번째 대작을 발표한다.

설날, 저 먼 독일에서 제주4·3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무대가 펼쳐진다. 너나없이 기쁜 명절에 무자년 4월의 영혼들도 안식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획된 공연으로 독일 다름슈타트 시립음대 학장인 유명 작곡가 코드 마이예링이 제주 중견 문학인이자 제주4·3연구소장인 허영선 시인의 시 '무명천 할머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바다의 곡(哭)'이 세계 초연된다.

이번 공연은 '진아영과 마티아스 카울을 추념하며'란 부제를 달았다. 진아영(1914~2004)은 '무명천 할머니'를 말한다. 제주4·3사건의 와중에 35세였던 고인은 마을에 진입한 토벌대가 쏜 총에 턱을 잃고 그 상흔을 감추기 위해 평생 무명천으로 턱을 가린 채 힘겹게 살아야 했다. 허영선 시인의 '무명천 할머니'는 4·3의 고통을 상징하는 인물인 진아영 할머니의 삶을 그린 시로 4·3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마티아스 카울은 지난해 세상을 뜬 타악기 연주자다.

재독 피아니스트 한가야. 4·3의 광풍을 피해 일본으로 향했던 재일음악가 한재숙 선생의 딸로 아버지에서 딸로 이어지는 4·3의 상처와 극복에 대한 염원을 피아노 연주로 표현할 예정이다.

'바다의 곡' 공연에 참여하는 재독 음악인들. 왼쪽부터 서예리, 정은비, 한애나.

시 '무명천 할머니'를 쓴 제주 허영선 시인.

코드 마이예링의 작업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실내음악, 무용음악, 오페라는 물론 영화음악까지 장르를 넘나든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이 되던 해에 한국의 3·1운동을 모티브로 '마르시아스-타악기 독주를 위한 심포니'를 작곡, 초연했고 2014 대구 국제현대음악제 주요 작곡가 지명 등 국내에서 마스터 클래스와 강연 등을 해 왔다.

러닝타임 약 45분에 이르는 '바다의 곡'은 마이예링이 한국의 역사를 다룬 두 번째 대작이다. 성악, 두 대의 피아노, 타악기, 현대무용, 오디오로 이뤄진 공연으로 시 '무명천 할머니'의 구절에서 제목을 따온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 '무자년 그날…', '링거를 맞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벗기는…'으로 구성됐고 '서곡', '간주곡', '후주곡'을 앞뒤로 배치했다. 한국의 전통리듬인 진양조를 따라 밀물과 썰물이 슬픔을 토해내는 듯한 느낌을 담아냈다.

이 무대엔 서예리, 한가야, 정은비, 한애나 등 재독 음악인들이 출연한다. 다름슈타트 시립음대 정교수인 소프라노 서예리는 윤이상 곡 연주의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는 성악가다. 정은비는 다름슈타트 시립음악학교에 출강하고 있는 젊은 타악기 주자다. 특히 칼스루에 국립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피아니스트 한가야는 '제주의 딸'이다. 4·3의 광풍을 피해 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북촌리 태생 재일음악가 한재숙 선생이 그의 아버지다. 한애나는 한가야의 딸로 피아니스트이자 무용가로 활동하고 있다. 4·3의 상처를 안은 1세대의 삶을 한가야, 한애나 3대로 이어지며 보듬는다는 점에서 뜻깊다.

공연은 현지 시각 2월 12일 오후 7시 독일 중남부 헤센 주에 있는 다름슈타트시립음대 빌헬름 페터슨홀에서 열린다. 비대면 음악회로 동영상 채널(https://youtu.be/udscYvvbOlw)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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