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우의 건강&생활] 영원해서는 안 되는 것

[정연우의 건강&생활] 영원해서는 안 되는 것
  • 입력 : 2021. 01.27(수)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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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만족스럽게 사용하던 핸드폰이 고장이 났다. 수리를 하기 위해 에이에스센터에 방문하니 '화면이 고장 나서 교체해야 되는데 그러면 새로 사는 거랑 별로 비용 차이가 안 납니다. 다른 부품도 언제 고장 날 지 모르고요. 그래도 고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본다. 눈물을 머금고 새 모델로 사고 나면 큰 돈은 나갔지만 또 기분이 좋기는 하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레이저 같은 것들도 보증기간이 끝나는 시점이 되면 기가 막히게 부품이 하나씩 고장이 난다. 수리를 할 때 마다 목돈이 들고 결국 더 좋은 기계로 업그레이드할까 고민하게 된다.

계획적 구식화 혹은 계획된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라는 이론이 있다.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소비를 부추겨야 하고 새로운 욕망을 일으켜야 한다. 물건을 만드는 쪽에서는 소비자가 너무 오랜 기간 물건을 사용하지 못하게 기존 상품들에 수명을 적당히 줄여 놓아 새로운 소비를 촉진한다는 이론이다. 이런 계획적 구식화는 인간의 몸에도 적용이 될까?

성형외과에서 사용되는 치료 재료 중 그런 의심을 받는 대표적인 것이 필러이다. 히알루론산 필러의 유지기간은 3개월~1년, 평균적으로 6개월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시중에는 2년~3년씩 유지되는 칼슘 필러제제와, 반영구 필러도 존재한다. 그런데 긴 유지기간의 필러는 생각보다 인기가 없다. 왜 이런 반영구 필러들은 별로 인기가 없을까? 실제로 1900년대에 파라핀, 액상 실리콘과 같은 몸에 들어가도 사라지지 않는 물질을 주입한 적이 있다. 일종의 영구 필러로 당장은 보기가 좋으니까 많이 사용이 됐는데 몸에서 분해가 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이 물질들은 종괴를 형성하거나, 장기간에 걸쳐 이동이 일어나고, 혈관을 점점 막으며 피부괴사를 일으키는 등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사용이 중단됐다. 몸에서 어느 정도 기간 볼륨을 유지하다가 대사과정을 거쳐 사라져야 하는 물질이 남아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변화하는 몸의 변화과정을 방해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과유불급’이다. 인간의 몸은 가만히 두면 변화가 없는 기계가 아니다. '오늘의 나' 와 '어제의 나'는 실상 동일한 인물이 아니다. 인간의 몸에는 약 60조개의 세포가 있고 약 60억개의 세포는 매일 죽고 새로 생겨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환자들이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수술을 해달라면서 병원을 방문한다. 성형수술로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건 가능할까? 아니 질문을 바꿔서 올바른 일일까? 주름은 근육의 움직임에 의해서 시간이 갈수록 심화된다. 주름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을 차단해 버리면 영구적으로 주름은 생기지 않게 된다. 환자는 주름은 없지만 무표정하고 움직임이 전혀 없는 얼굴을 얻게 될 것이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기능하고 변화하는 것이 인간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이다. 유리 델몬트 주스병처럼 깨질 때까지 똑같은 모습으로 박제하는 것은 인간에겐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일이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기능성의 조화가 현대 성형외과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라고 하겠다. <정연우 슬로우성형외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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