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제주 화북천 검은 바위를 천으로 닦는 이유

그가 제주 화북천 검은 바위를 천으로 닦는 이유
문화공간 양 용해숙 개인전… 개발·4·3 등 제주의 어제와 오늘
  • 입력 : 2021. 01.06(수) 18:09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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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해숙의 '왓, 18컷'. 화북천 바위를 닦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작가는 허리를 잔뜩 구부려 장갑을 낀 손으로 화북천 바위를 닦는다. 골 깊은 그 하천의 현무암엔 제주4·3의 사연이 배어있다. 작가의 행위는 그날에 죽은 이름모를 이들의 넋을 달래고 남은 자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의례다.

강원도 홍천과 서울에서 활동해온 용해숙 작가가 한국의 근현대사가 압축된 듯한 제주의 어제와 오늘에서 만난 이야기들로 제주시 화북 거로마을 문화공간 양(관장 김범진)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2019년에 제주를 오가며 작업을 벌였고 지난해엔 문화공간 양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작가의 시선은 4·3에서 오늘날의 개발 문제까지 닿는다.

지난해 11월 27일부터 시작된 이번 개인전은 '왓, 18컷'이란 제목을 달았다. '왓'은 제주어로 밭을 뜻한다. 작가는 제주라는 밭에서 지난 10여 년간 벌어진 파괴와 개발,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는 4·3의 사연을 설치, 영상, 사진, 소리 등으로 풀어냈다.

그의 작업은 공터에서 주운 고무공 등 '너절한' 물건들이 빚어내는 부조화, 커튼처럼 전시장에 드리워졌던 축축한 미역이 시간이 흐르며 꾸덕꾸덕해지는 물성 등 경계를 허무는 갖가지 방식으로 드러난다. 지역민의 의견 수렴을 무시한 개발로 공동체에 균열이 생기고, 마을의 역사가 잊혀지는 제주의 현실 속에 오래된 공간이나 사물이 주는 삶의 시간성이 전해진다.

전시는 이달 13일까지. 관람은 이메일 예약(curator.yang@gmail.com)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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