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옥살이' 제주4·3 수형인 재심 첫 무죄 선고

'억울한 옥살이' 제주4·3 수형인 재심 첫 무죄 선고
제주지법, 일반재판 받고 옥살이 한 수형인 무죄 선고
재판부 "가슴 맺힌 응어리 푸는 작은 출발점 되길"
김두황씨 판결 직후 "봄이 왔다, 꽃이 피었다" 감격
  • 입력 : 2020. 12.07(월) 10:51
  • 이상민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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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당시 억울한 옥살이한 한 김두황(92)씨가 7일 제주지법에서 열린 재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직후 손뼉을 치며 감격 스러워하고 있다. 이상민 기자

제주4·3 당시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억울히 옥살이를 한 4·3 수형인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70년 제주 4·3역사를 통틀어 4·3수형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7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4·3 수형인에 대한 재심 재판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옥살이한 한 김두황(92)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형사 재판에서 공소사실 입증 책임은 검찰에게 있지만, 앞서 검찰은 이를 하지 못해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구형했다"면서 "따라서 이 사건은 범죄를 증명할 수 없는 것에 해당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선고 직후 이례적으로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며 미리 준비해온 글을 읽었다.

재판부는 "해방직후 극심한 이념대립 속에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청년이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며 "이 과정에서 개인의 존엄성은 훼손됐고, 삶은 피폐해졌다"고 했다. 이어 "92세인 피고인은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지 못하고 자신의 탓으로 혹은 운명으로 여기며 오늘에 이르렀다"면서 "피고인의 억울함을 가늠하기 힘들다. 이번 무죄 선고가 그동안의 응어리를 푸는 작은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김씨를 위로했다.

 김씨는 1948년 11월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의 자택에서 영문도 모른채 경찰에 체포돼 성산포경찰서로 끌려갔다. 이후 변호사 없이 진행된 일반재판에서 내란죄 등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목포형무소에 투옥된 뒤 1950년 2월 출소했다.

 당시 김씨의 판결문에는 1948년 9월 25일 난산리 소재 김천말씨의 집에서 주민 6명과 무허가 집회를 열고 폭도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기로 결의했다고 나와 있다. 같은해 9월28일 오후 9시 자택에서 또다른 김모씨 등 2명에게 좁쌀 1되를 제공해 폭동행위를 방조했다고 판결문에 적혔지만 김두황씨는 줄곧 "날조된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4·3 광풍 속에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4·3 수형인에게 공소 기각 판결이 내려진 적은 있지만 김씨처럼 무죄가 선고된 것은 처음이다. 김씨는 일반재판을 받은 반면 공소 기각 판결을 이끌어 낸 4·3수형인은 군사재판을 받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공소 기각은 재판부가 검사의 공소가 적법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사건의 실체 심리를 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시키는 형식재판을 말한다. 다만 무죄와 공소기각 모두 피고인의 권리를 구제 받는 것이라는 점에선 차이가 없다.

김두황씨는 무죄 선고에 감격스러워했다. 김씨는 "여러분 유채꽃이 피었습니다. 봄이 왔습니다"라는 말로 응어리 진 한을 씻어냈다. 김씨의 딸은 아버지 옆에서 내내 눈물을 훔쳤고, 재판을 도운 4·3도민연대 관계자 등은 김씨 뒤에서 무죄 팻말을 흔들며 환호했다.

한편 재판부는 김두황씨와 함께 재심 재판을 받아온 김묘생(92), 김영숙(90), 김정추(89), 송순희(95), 장병식(90)씨와 올해 별세한 변연옥(91), 송석진(94)씨 등 7명에 대해선 선고를 연기했다. 이들은 1948~1949년 사이 군사재판을 받고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 전주·목포·인천 형무소에서 1~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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