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없는 제주4·3 수형행불인 첫 재심 개시 결정

시신 없는 제주4·3 수형행불인 첫 재심 개시 결정
제주지법, 故오형률씨 유족 등 10명 제기 재심 청구 인용 결정
재판부 "행불인 사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 청구 자격 인정
  • 입력 : 2020. 11.30(월) 14:37
  • 이상민 기자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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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광풍에 휘말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행방불명된 피해자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재심을 결정했다.

시신이 없어 생사를 알길 없는 제주4·3수형행불인에 대한 법원의 첫 재심 결정으로 나머지 행불인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부장판사 장찬수)는 30일 4·3당시 내란 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옥살이를 한 뒤 행방불명 된 故오형률씨 등 4·3행불인 유족 10명이 제기한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재심 개시를 가를 가장 주요한 쟁점은 4·3행불인이 법적으로 사망했는지를 입증할 수 있는 지였다. 형사소송법상 재심 청구는 유죄를 선고 받고 형이 확정된 자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자가 사망했을 땐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 등만 할 수 있다.

만약 행불인의 사망 사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유족 측은 재심을 제기할 자격이 없어 자동적으로 청구가 각하 또는 기각된다.

이날 재판부는 4·3행불인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재심 청구 대상이 된 행불인 10명이 지금까지 모두 살아있다고 가정한다면 가장 어린 행불인의 나이는 86세, 가장 연로한 행불인의 나이가 106세"라며 "당시의 평균 수명이 현재의 평균 수명에 크게 못 미쳤던 점, 처우가 매우 좋지 않은 수감자 신분 상태에서 한국전쟁 발발 직후 생존하기 힘들 것으로 보있는 점들을 비춰보면 행불인들이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상식적이다"고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4·3행불인들이 만약 살아 있었다면 지금껏 고향에 돌아오지 않고 연락을 끊을 이유도 없어 보인다"며 원고들이 제기한 재심 청구가 적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같은 판단을 전제로 "(4·3당시 수형인을 상대로) 불법 구금과 수사 과정에서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기록을 통해 입증됐다"며 "따라서 재심 개시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현재 재심을 청구한 4·3행불인 피해자는 349명이다. 이들은 1948~1949년 사이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 혐의로 적법한 절차없이 군사재판에 회부돼 형무소에서 숨졌거나 행방불명됐다. 이날 재판부는 349명 가운데 지난해 6월 가장 먼저 재심을 청구한 10명을 상대로 개시 결정을 내렸으며 나머지는 심문 절차를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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