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목요담론] 고향을 떠나 명절을 보내는 파랑새 가족

[김완병의 목요담론] 고향을 떠나 명절을 보내는 파랑새 가족
  • 입력 : 2020. 09.24(목)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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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파랑새 세 마리가 태어났다. 파랑새 암수 한 쌍이 알을 품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2개월 만에 현장을 찾았다. 번식 중에 새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알 품기와 새끼 기르는 과정을 염탐하는 것이어서 조심해야 한다. 제보자는 새들의 비행이나 행동을 순간 포착하는 눈매가 매섭다. 파랑새가 제주에서 첫 번식 장면을 촬영하는 행운이었기에, 누구보다도 설레고 조마조마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파랑새는 우리나라 전역에 날아오는 여름철새이지만, 제주에서는 이동 시기에는 잠깐 보일 뿐이다. 몸 색깔은 전체적으로 청록색이며, 날개를 펼치면 양 날개 아래에 하얀 무늬가 선명하다. 행운을 상징하기는 하지만, 뚜렷한 몸 색깔 때문에 해안가에 접근할 때 매에 습격당하는 불운을 당하는 새가 바로 파랑새이다.

파랑새의 둥지는 딱따구리의 구멍이나 까치의 옛 둥지를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아기 파랑새들의 보금자리는 마을회관 송신탑에 튼 까치의 헌 둥지였다. 8월 2일 어미가 밖에서 나오라고 신호음을 보내지만, 막내는 좀처럼 반응하지 않는다. 어미는 막내가 배고픔을 느낄 쯤에 매미 한 마리를 물고 둥지에서 다시 신호를 보낸다. 반응이 없자, 어미는 둥지 속 막내에게 먹잇감을 넣어 주고는, 다시 탈출해야 된다고 유인 신호를 보낸다. 드디어 막내가 결심하고 다른 형제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사실 처음엔 새끼가 몇 마리인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동행한 지인들의 끈질김으로 새끼 세 마리를 찾아냈다.

막내가 마지막으로 둥지를 떠난 이후에도, 어미는 새끼들을 늘 곁에 두고 먹이를 물어다 줘야 한다. 새끼들이 홀로 장거리 비행하거나 독립적으로 먹이활동을 하기까지는 한 달가량 어미의 보살핌이 이어졌다. 둥지에서 나올 때 이미 어미만큼이나 자랐지만, 매와 같은 천적에 대항하려면 어미로부터 전수받아야 할 것이 많다. 각자 시간을 두고 이소했지만, 어미의 부름에 응하고, 큰부리까마귀나 까치를 피하고, 성가시게 하는 직박구리와 싸우고, 매미를 낚아채고, 장거리 비행을 위해 몸매를 다듬고, 비와 바람을 극복하는 등 월동지로 떠날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

올해는 파랑새와 잿빛쇠찌르레기의 첫 번식, 그리고 쏙독새와 왜가리의 두 번째 번식이 각각 확인될 정도로 조류 전문가들의 카메라를 바쁘게 했다. 여름철새들이 제주의 자연환경에 잘 적응해가는 반면, 사람들의 일상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코로나19에 속수무책이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벌금까지 내야하니, 뭐든 남 탓으로 돌릴 정도로 극도로 예민해졌다.

8~9월은 코로나와 태풍으로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간이었다. 코로나 이후, 추석 명절을 보내는 것이 편치 않다. 파랑새는 저 멀리 내려가 추석과 성탄절을 맞겠지만, 그곳도 코로나19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다. 명절을 맞았지만 가족이나 친지를 만나는 기쁨이 달갑지 않을 것처럼, 파랑새 가족도 걱정이다. 행복과 행운의 상징인 파랑새가 주목받지 못해 아쉽지만, 파랑새의 부지런함과 번식 성공은 지금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는 위안이 될 것이다. 자연과 상생하지 않는 이기주의는 언제든 큰 재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제주에서 보낸 파랑새의 가족이 무사하길 바라며, 내년에 다시 찾아와서는 진짜 행복한 소식을 전해주길 기원해본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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