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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석의 한라칼럼] 우리 시대의 언어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입력 : 2020. 09.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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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에는 다양한 욕구의 분출과 더불어 그 세태를 반영하는 새로운 용어도 등장한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와 Blue(우울한)의 합성어로, 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경제 불황으로 인한 우울감과 무력감을 반영하는 용어이다. 마스크 착용 문제로 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코로나 블루'는 이 시대를 적확하게 표현하는 용어인 것도 같다.

"언어는 인류가 써온 가장 강력한 마약이다." 노벨문학상 작가인 러디어드 키플링의 말이다.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군사력이나 경제력보다 제3의 파워인 말의 힘이 더 강력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는데,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매우 드물다"며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언어가 강력한 힘을 가진 만큼, 그 언어의 힘을 이용한 용어가 새로이 등장하기도 한다. Luxury Goods는 사치품이나 호사품으로 번역돼야 함에도, 굳이 '명품'이라는 용어로 번역됐다. '명품'은 단지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에서 나아가 예술성과 장인정신, 그리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가치를 포함한 용어가 된다.

한때 뉴스에서 많이 듣던 '사회지도층'은 국민을 그들의 지도를 받는 사람으로 당연시하던 시대의 단면이다. '사회지도층'은 부나 명예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것을 더욱 공고히 하고, 그들의 지도를 받는 다수 국민들의 저항권을 옭아매는 용어가 된다. 아직도 혼재돼 사용되는 '근로'와 '노동'은 '근로의 의무'를 강요하는 측과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는 측의 용어로 사용된다. 노동3권, 노동쟁의 등에서 보듯 '노동'은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는 용어이다. 헌법 제32조에서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며 '근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1948년 헌법 제정 시 극심한 이념대립의 산물이다.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인지 '노동절'인지는 단지 용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가 노동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가 된다.

'선진국'은 문물의 발전이 앞선 나라를 뜻한다. 이 용어는 지속적인 경제 개발로 경제 발전이 최종단계에 접어든 국가를 지칭한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선진국의 민낯을 목도한다. 공동체를 위한 시민의식의 결여,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 의료시스템의 미비 등 우리가 선진국에 품었던 환상들이 하나씩 부서지고 있다. '선진국'은 문화와 문명의 발전을 선도하는 국가로 과대 포장돼 '후진국'에 대한 견고한 울타리로 기능했다.

센 언어와 용어가 난무한다. 의도적으로 더 강한 언어를 사용해 상대를 공격한다. 언어가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이 되고, 반복적으로 악용되면서 의식을 지배한다. 갈등의 현장에는 언제나 말의 성찬이 펼쳐진다. 강한 언어가 같은 편을 뭉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상대를 설득시킬 수는 없다. 품격이 사라진 자리에 합리적 논의의 장은 요원한 일이 되고, 할퀸 상처만이 흉한 몰골로 남게 된다. 조금 더 순화된 언어와 용어를 보고 싶다. '코로나 블루'가 아니라 '코로나 옐로우'는 어떨까. 힘든 시기일수록 서로를 배려하고 희망을 주는 언어의 힘이 필요하다. 언어는 강력한 마약이 아니라 치료제이고, 사람을 세뇌시키는 것이 아니라 설득시키는 것이다.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는 하루이기를….

<문만석 사)미래발전전략연구원장·법학박사·독자위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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