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오로지 사랑… 나는 당신으로 시를 쓰지요

[책세상] 오로지 사랑… 나는 당신으로 시를 쓰지요
이원하 산문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 입력 : 2020. 06.19(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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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란 시로 단숨에 우리 문단에 떠오른 이원하 시인. 그 시를 표제로 단 시집을 낸 시인이 고백과도 같은 내밀한 이야기들로 첫 산문집을 냈다.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이다.

제주, 네팔, 부다페스트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 간간이 그곳의 풍경이 스민 사진이 더해진 산문들은 앞서 출간한 첫 시집의 시와 결을 같이 한다. '동경은 편지조차 할 줄 모르고', '눈 감으면 나방이 찾아오는 시간에 눈을 떴다', '서운한 감정은 잠시라도 졸거나 쉬지 않네요'와 같은 산문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겠다.

시인은 "혼자 살고 술은 약하다는 말은 사실 구조 요청 메시지"였다고 했다. 이마를 내놓고 다니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여자의 말에 가위를 들고 온 남자는 앞머리를 만들어주곤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육지로 가버린다. 남자가 온다는 기약이 없자 시인은 편지 아닌 편지를 쓰게 된다. 그 편지의 시작이 이랬다. 저 아직도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오직 사랑으로 추동되는'(황인찬 시인) 구체적인 장면과 문장들은 계속된다. '당신이 꽃으로 글을 쓸 때 나는 당신으로 시를 쓰지요'에서 시인은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털어놓는다. "시를 쓰면 더 예뻐할 것 같았고 나아가 시인으로 등단하면 더 예뻐할 것 같았어요." 남자는 그런 줄 모른다. 시인은 주머니처럼 여태 속마음을 숨기고 있다. 급기야 시인은 "당신에게 놀아나는 내 인생이 나는 좋아요"라고 말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포기하면 좋겠어요. 나만 당신을 잡게요."

이 산문집에서 시종 경어체로 쓰여진 문장들은 시인이 그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독자들에게만 털어놓는 사연 같다. "꺼내지 못한 말 한마디가 마음 속에 살아"서 입술에만 머물렀던 적이 비단 시인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기에 우린 그 사랑을 응원하게 된다. 달. 1만4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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