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14)문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14)문
문지방, 남의 영역으로 가는 경계선… 제주굿엔 질치기
  • 입력 : 2020. 06.15(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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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국어에선 대문을 '오래'
문, 시작이자 길흉화복 통로

문전제 험한 제주역사의 반증

#문(門)에 담긴 의미

한자에서 집을 나타나는 '호(戶)'는 '보호한다(護)'는 뜻이다. 집에는 문(門, door)이 있는데 곧, 지게문이 있으며 그 문의 반쪽을 '호(戶)'라고 하는 것이다.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에서의 글자 모양은 모두 두 짝의 지게문 모습이다. 문은 듣는다[聞也]는 뜻으로 풀이하는데 문밖에서 안의 소리를, 그리고 반대로도 들을 수 있고, 문의 기능이 여닫는 문단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을 열고 집에 드나드는 것이 확장돼 교류와 소통을 위해 문을 연다는 말로 '문호(門戶)를 개방한다'라고 한 것이다. 또, 다른 뜻으로는 사람의 몸에는 구멍이 있어서 문과 관계된 기관이라면 항문(肛門)이 있으며, 여성의 성기를 음문(陰門)·하문(下門)·옥문(玉門) 등도 문과 관계가 있다. 사상이나 종교의 유파(流派)에 참여하는 것,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입문(入門)이라 하고, 같은 학교에서 수학한 사람들을 동문(同門)이라 하고, 한 스승 밑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문하생(門下生)이라고 하며, 전문 지식이 없거나 어떤 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을 문외한(門外漢)이라고 하는 것 등이 모두 문의 중요함을 강조한 말들이다.

대문에 입춘첩을 붙여 길상을 기원한다.

중세 국어에서는 대문을 '오래'라고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도 '오래'이다. 제주도에 중세의 '오래'라는 말이 남아 있어 지금도 집의 골목을 '올래'라고 하고, 음택의 산담에도 올래를 만들어 마소와 산 자는 못 가게 하고 사자(死者)는 때를 결정해서 오가게 했다. 그러니까 사람이 지나다니는 곳을 '도 막다'라거나 혹은 '도 터지다'라고 하여 입구를 '도'라고도 했는데, 일본어 도(do, 門戶)에서 온 말이라고 생각된다.

일본 신사(神社)의 문을 '도리이(鳥居)'라고 한다. 국어에서는 '돌'은 문을 말하고 '이' 또한 문의 뜻을 지니고 있어서(李基文, 1992) 제주도 집 입구의 이문간(里門間)도 이와 연관지어 볼 수 있겠다.

이문간은 대개 올래를 약간 남기고 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지은 3칸 건물로 언뜻 보면 밖거리처럼 사용하는 통로 문이다. 문을 가운데 두고 좌우 양옆에는 소를 키울 수 있도록 쇠막으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식구가 느는 집에서는 한쪽을 방으로 개조하여 쓰기도 했으며, 쇠를 키우지 않게 되자 농기구나 각종 허드렛 도구의 보관창고로 사용했다. 이문간 앞에는 짧게나마 올래를 두어 바람의 영향을 고려했다.

이문간.

제주의 민가에서 중요한 문은 대문(大門)이다. 육지식의 대문은 올래의 정낭에 해당한다. 제주식 대문은 난간 앞 상방(마루) 입구의 문을 대문이라고 하는데 집안의 큰 문이다. 문짝 두 개로 여닫는 대문을 열면 바로 마루가 나오는 데 오늘날의 거실에 해당한다. 반대로 마루에서 대문 밖을 보면 마당과 올래가 보인다.

제주의 대문 역할을 하던 것이 정낭이다. 처음의 정낭은 올래 양편에 세우고 1개에서 5개까지 긴 나무를 걸치는 정주목(旌柱木)이었는데 후대로 오면서 정주석으로 바뀌었다. 지지대에 해당하는 정주목 나무가 단단한 나무라도 쉬이 썩기 때문에 돌에다 구멍을 뚫어 세웠다. 정낭 숫자의 3의 의미는 후세에 만들어진 말에 불과한데 정주석의 구멍 수가 말해주듯이 정낭은 1~5개까지 말을 키우는 집에서 기능적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실제로 정낭은 숫자와 상관없이 사람이 집에 있을 때는 한쪽을 전부 내려있고, 예점(쉽게) 갔다 올 데가 있을 때는 한 개만 대충 걸쳐 빨리 다녀오기도 한다. 아예 며칠 먼 곳을 다녀올 때에는 몇 개라도 정낭을 전부 걸어놓는다. 이것은 아마도 말을 키우던 유목사회의 오랜 흔적이라고 생각된다. 키우는 말의 크기에 따라 정낭의 높이가 결정된 것이다.

4~5개 구멍이 뚫린 정주석.

#문지방은 경계(liminality)

문에는 구조상 문턱이 있게 된다. 그것을 문지방이라고도 한다. 문지방은 상징적으로 어떤 경계의 의미가 있으며, 생활세계에서 역할이나 재산, 이익 분배도 분명하게 "곱을 갈라야 하는[경계선이 분명해야]" 경우를 말해주는 곱(구분)이다. "문지방 높은 거, 사돈 높은 거"라는 속담에서처럼 어려운 사돈을 높은 문지방에 비유하여 까다로운 사돈이 그만큼 대하기가 불편하다는 것에서도 문지방이 다른 관계로 넘어가는 경계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모든 관계에는 경계영역의 의미로 '그믓'[線], 울타리, 구역이 있다. 문을 세운 것은 출입을 허용하기도 하지만 금지하기도 하는 것이다. 마을의 표석이 바로 그런 경계표이다. 그곳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통행증이나 통행료 지불 등 어떤 의례적 절차가 있게 마련이다.

제주굿의 '질치기 제차'에서, 망자는 열두군문을 지나야 하는데 문마다 길을 닦는 의례 행위를 거치고 인정을 걸어야 그 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문지방의 의미이다. 이 문턱을 통과해야만 현재의 시간과 공간적 장소를 벗어날 수 있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상여소리에도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이네"라는 말을 볼 때 문 사이를 두고 이승과 저승을 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은 사람이 드나드는 통로이자 이 문을 통해서 길흉화복이 오가고, 잡귀와 악운도 들어온다고 믿었다. 육지와는 달리 제주도에는 문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집안에 잔치가 있을 때나 아들이 군대를 갈 때, 제사 때 문전제(門前祭)를 지내어 문을 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키는 문신에게 무사안녕을 빌고 있다.

문의 경계인 문지방을 넘는다는 것은 가정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는 일이고, 생과 사를 넘는 일이며, 안전한 집에서 위험한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된다. 무속에서는 돌담으로 신과 신의 경계를 가르기도 한다. 종교적 입장에서는 각 나라의 신들이 서로 공존하기 위해 이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여성이 정지(부엌)와 고팡(창고)을 담당하는 것도 소위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자 함이고, 문신, 정지신, 고팡신, 칙간신이라고 공간으로 나누는 것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계는 개체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회적으로 모인 것이다. 다시 그 사회의 내면은 남과 여의 세계로 구분되고 운영된다.

#문 나서면 세상은 위험지대

제주도 집에는 신들이 많이 산다. 우선 토지신이 있고, 집의 성주신, 대문의 문전신(門前神), 부엌에 조왕신(조왕할망), 통시에 칙간신, 고팡에는 안칠성(또는 안내라고도 함), 뒷 울타리 아래에는 밧칠성(칠성은 안칠성이나 밧칠성 중 하나만 모신다), 올래에는 올래직이 정주목신, 눌에는 눕굽지신 등이 있다. 이 신들 중 조상제사 때 같이 고사(告祀)하는 신이 독상(獨床)으로 모시는 문전신이고 대광주리(상착)에 제물을 놓는 안칠성, 부엌 바닥에 차리는 조왕신 등 제주도 제사는 집안마다 예법이 다르며 가문가례(家門家禮) 전통이 있어서 조금씩 차이가 난다.

여러 가택신 중에도 문전신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문이야말로 일상에서 지나가야 할 통로, 즉 미래 인생길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사에 길을 잘못 들면 안 되고, 길을 제대로 찾아야만 만사가 편하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문은 나서는 순간 험로에 선 것이다. 그래서 문이야말로 길을 찾는 시작점이기에 문전제를 치러 가는 길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게 된다. 험한 제주 역사의 반증이리라.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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