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59)우리는 때로 우리를 토벌했습니까(문충성)

[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59)우리는 때로 우리를 토벌했습니까(문충성)
  • 입력 : 2020. 05.21(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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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우리를 토벌했습니까

우리는 때로 우리를 습격했습니까

제주 섬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산 폭도가 되고 빨갱이가 되고

산간 마을들 불탔습니까 그 섬마을 사람들

총에 맞고 죽창에 찔려 죽임을 당했습니까 비록

그 비참한 삶이 지난 세기 1940~50년대뿐이었겠습니까

제주 바다 수평선 건너온 사람들

그 사람들 핏빛 이데올로기들

10대 나의 소년은 낯선 겁에

질려 말조차 잃어버렸습니까

2연대에 내준 아아, 우리 북초등 학교

관덕정 근처

칠성통 입구 헌병대 근처 아득히

봉홧불 타오르던 오름들

보입니까 그 처참한 주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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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0선거를 반대하는 무장대의 기습으로 시작된 4·3사건은 1954년 9월 21일 주도자들이 진압될 때까지 토벌대에 의하여 양민들이 학살되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에 봉홧불이 피어오르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행정기능이 마비되고 치안 불안상태가 지속되었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청년들은 좌익사상에 물들어 있었다. 그들이 제주도를 해방구로 선언했다. 토벌(討伐) 또는 정벌(征伐, punitive expedition)은 특정 사람 또는 세력에 대한 징벌적 원정 행위이다. 일반적으로 불복종 세력 또는 도덕적 불온세력에 대해 이루어지는 원정의 경우 토벌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대전에 있던 제2연대가 투입된다. 함병선(咸炳善)) 대령이 이끈 제2연대가 1948년 12월 29일 제주도로 이동한다. 무장대는 이덕구(李德九)의 지휘 하에 있었다. 함병선은 무장대를 섬멸하기 위해 1949년 1월 4일부터 항공기와 함정의 지원을 받아 토벌작전을 폈다. 함병선은 갱생원(更生院)을 설치하고 집중적인 선무(宣撫)활동도 벌였다. 1개월 사이에 1500여 명이 산에서 내려와 갱생원으로 갔다. 2연대는 1949년 1월 13일, 남원면 의귀리에서 공비 3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제주역사는 국가와 이데올로기 역사 속에 묻혀갔다. 일제강점기, 4·3, 한국전쟁을 거치며 상처와 눈물의 뜻을 캐내야 할 것 같던 땅. 제주섬의 아이가 시인이 되어 노래한다. 죄 없는 민중들, 언제 우리가 그랬냐는 강렬한 톤. 항변하듯, 제주사람들의 상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되 노골적이지 않다. 1948년 연좌제가 부활했다. 4·3유족들은 연좌제로 무고한 희생이 당대에 그치지 않고 유족에게 대물림됐다. 군·경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사법처리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연좌제에 의해 감시당하고, 공직 진출, 취직, 승진, 사관학교 등 각종 입학시험과 해외 출입 등에 온갖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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