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58)섯알오름의 봄(이애자)

[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58)섯알오름의 봄(이애자)
  • 입력 : 2020. 05.14(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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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리트머스에 산이 온통 붉더라네

적엽을 털어내던 섯알오름 등 굽은 해송

반사적 과민반응이 내게 일침을 놓네



사삼사삼 사상사상 말꼬리가 잡혔는지

희뜩 뒤집힌 눈알로 천계를 구르다

빈 하늘 손도장 찍고 위령탑에 걸린 낮달

푸르르 칠색 춤사위 불귀의 객 달래네

저 장끼 박수무당 목울대가 붓도록

비문에 파묻은 혼백 꺼-억 꺼-억 부르네



유채꽃 송이마다 부싯돌을 그으며

알뜨르 활주로에 유도등 켜는 햇살

사월의 탑승객처럼 학살터에도 봄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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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읍 상모리에 자리한 송오름(송악산) 북쪽에 알 오름 세 개가 동서로 뻗어있다. 동쪽 것을 동알오름, 서쪽 것을 섯알오름, 가운데 것을 셋알오름이라 한다. 한자로 쓸 때는 각각 동란봉(東卵峯)·중란봉(中卵峯)·서란봉(西卵峯)으로 썼다. 섯알오름 꼭대기에는 일제 강점기에 설치한 고사포 진지가 있고, 그 남쪽 기슭에는 학살터가 있다. 섯알오름 서쪽에는 일제 강점기에 이용했던 비행장터가 있고, 일제가 파서 이용했던 벙커가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당국에서는 전국적으로 보도연맹원을 체포 구금했다. 이때 제주지구 계엄당국에서도 820명의 주민을 검속했다. 당시 모슬포 경찰서 관내 한림·한경·대정·안덕 등지에서도 374명이 검속됐는데, 이들 중 149명을 대정읍 상모리 절간 고구마 창고에 수감하였다가 1950년 8월 20일(음력 7월 7일) 새벽 4~5시경 집단학살하였다.

이보다 앞서 이날 새벽 2시경 한림지서에 검속되었던 63명도 계엄당국에 의해 집단총살 당하였다. 섯알오름 학살터는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기 때문에 암매장 구덩이도 두 개가 만들어졌다. 우선 학살 당일 소문을 들은 유족 300여명이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학살현장에 모여들어 27구 정도의 유해를 구덩이 밖으로 인양하여 수습하던 중 군 당국의 무력저지 때문에 꺼내 놓은 시신마저 다시 구덩이에 놓은 채 수습을 포기해야 했다.

6년여가 지난 1956년 3월 30일 당시 한림지서에 수감되었다가 희생된 63구의 시신이 유족들에 의해 수습되어 한림면 금악리 공동장지에 안장했다. 이 소문을 들은 모슬포지서 수감 희생자 유족들이 1956년 4월 28일 시신수습을 시도했으나 또 다시 군의 저지로 무산됐다. 하지만 유족들의 요구로 시신발굴허가를 받았고, 1956년 5월 18일 발굴을 통해 149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중 식별이 가능한 17구의 시신을 제외한 132구는 백조일손 묘역에 안장했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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