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으로 태어난 제주, 미리 온 태풍의 고백

바람으로 태어난 제주, 미리 온 태풍의 고백
국립제주박물관·제주기상청 태풍 주제 특별전 공동 기획
인문·자연과학적 시선으로 태풍의 위력과 순기능 살펴
기상·역사·생활자료 50여점… 7월 5일까지 전시 계속
  • 입력 : 2020. 05.12(화) 17:08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제주지방기상청이 소장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기상연보 원부.

루사(2001), 매미(2003), 나비(2005), 곤파스(2011), 메아리(2011). 7~10월이 되면 해마다 20~30개가 발생하는 태풍의 이름들이다. 엄청난 비바람을 몰고 오는 태풍은 더러 가뭄을 물리치고 녹조를 해소하는 등 효자 노릇을 하지만 루사처럼 5조2000억원 가까운 재산피해를 남기고 떠난다.

'태풍의 길목' 제주에서 맹렬한 그 바람을 인문·자연과학적 시선으로 두루 살핀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제주박물관(관장 김유식)과 제주지방기상청(청장 권오웅)이 손잡고 마련한 '태풍고백(颱風告白)' 특별전이다. 가상의 태풍 '고백'을 제목으로 태풍이 미처 못다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다.

하멜 표류 기록이 들어있는 국가 지정 보물인 17세기 지영록.

이달 12일부터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태풍의 생성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급변하는 기상·기후 변화, 태풍이 빚어낸 제주문화 등을 다루고 있다. 태풍이 인간에게 파괴를 일삼아온 기상 현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현상이고 해양생태계의 순환을 돕는 유익한 면모도 지니고 있음을 알려준다. 태풍을 기록한 역사서,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준 역대 태풍, 그것을 품고 때로는 맞서기도 한 제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생활자료 등 50여 점이 전시장에 나왔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태풍 피해는 700건이 넘는다. 그중 제주는 바람의 섬이었다. 조선시대 김정은 이방인의 눈으로 쓴 '제주풍토록'에서 "집을 둘러 돌담을 쳤는데 흙덩어리와 돌을 쌓아 높이가 한 길 정도 되고 위에는 녹각목을 꽂아두었다.… 그러나 돌담이 높고 좁은 것은 이 고장의 풍속이 모두 그러하니,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를 막기 위함이다"고 했다. 제주사람들은 일찍이 초가 지붕을 낮추고 돌담과 올레를 내어 거센 바람을 받아들이며 살았다. 예측불허의 태풍은 두려움이 대상이었지만 폭풍은 바다를 뒤집어놓으며 풍요로운 해산물을 토해내는 걸 알았기에 옛 사람들은 음력 2월 영등굿을 치렀다.

바람은 새로운 문화를 제주에 부려놓는 역할도 했다. 14세기 태풍으로 침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안선 유물은 우리에게 보물을 안겼다. 17세기 폭풍에 좌초되어 제주에 난파된 네덜란드 사람 하멜 일행은 표류기를 통해 제주, 조선과 바깥 세상을 만나도록 이끌었다.

제주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무선통신기기를 이용한 근대적인 기상업무가 이루어졌다. 제주지방기상청의 전신인 제주측후소가 세워진 해는 1923년이다. 제주측후소 설립 당시부터 온도, 습도, 풍향 등을 수기로 기록한 '기상연보 원부'가 이번에 처음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이 전시에는 제주의 바람과 태풍을 소재로 제작된 현대미술 작품도 놓였다. 공모에 뽑힌 사진과 영상을 이용한 대형 영상물도 볼 수 있다. 전시는 7월 5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064)720-8102.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7359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