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57)제주섬, 동백꽃, 지다(변종태)

[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57)제주섬, 동백꽃, 지다(변종태)
  • 입력 : 2020. 05.07(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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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뒤뜰의 동백나무를 잘라버렸습니다

젊은 나이에 뎅겅 죽어버린 아버지 생각에

동백꽃보다 붉은 눈물을 흘리며

동백나무의 등걸을 자르셨지요

계절은 빠르게 봄을 횡단(橫斷)하는데,

끊임없이 꽃을 떨구는 동백,

붉은 눈물을 떨구는 어머니, 동백꽃

목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먼 산 이마가 아직 허연데

망나니의 칼끝에 떨어지던 목숨,

꼭 그 빛으로 떨어져 내리던,

붉은 눈물, 붉은 슬픔을

붐이었습니다, 분명히

떨어진 동백 위로

더 붉은 동백꽃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심장 위로 덜커덕,

쓰린 바람이 훑고 지나갑니다

먼저 떨어진 동백꽃 위로

더 붉은 동백이 몸을 날렸습니다

봄이었고요

아직도 한라산 자락에 잔설(殘雪)이 남은 4월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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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관계자들은 제주섬을 '제2의 모스크바', '빨치산의 섬'이라 칭하였고 무장봉기 가담자들을 '산사람', '폭도', '무장공비', '적구(赤狗 붉은 개)'라고 불렀다. 초대 주한미군 고문단 단장이었던 로버츠(William L. Roberts) 준장은 서슴없이 '미국식 빨갱이 토벌전'을 명령하였다. 군정장관 딘(William F. Dean) 소장은 '살해 방화는 외지에서 온 공산당원의 소행'이라고 선전하였다. 한라산을 오르는 붉은 꽃은 붉은 열매를 남기고 떨어지고, 붉은 꽃을 따라 산으로 오른 푸른 잎은 붉은 잎이 되어 산을 내려온다. 새들이 붉은 열매를 물고 날다가 붉은 빛이 산의 피울음인 것을 안다. 산은 모두가 붉은 꽃이다. 일경(日警)은 독립운동가들 이름에 빨간 점을 찍어 놓고 '아카'라고 불렀다. '아카(あか)'는 빨갛다는 의미이다. 독립투사들도 '아카' 빨갱이들이었다. 아카와 빨갱이는 둘 다 사람의 속성을 '빨강(赤)'이라는 색깔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빨치산은 1946년부터 시작되었다. 친일경찰의 악행과 각종 사회문제 때문에 대구에서 시작된 10월 인민항쟁은 전국을 휩쓸었다. 탄압에 맞서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조직이 '야산대(野山隊)'라는 이름으로 조직되었다. 빨갱이는 단순히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정과 친일파 반대,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에 씌우는 주술로 쓰였다. 친일파 청산을 거론해도, 외세 배격을 주장해도 '빨갱이'라는 굴레가 씌워져 탄압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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