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을 떨군 제주 나무들, 10년 후도 거기 있을까

잎을 떨군 제주 나무들, 10년 후도 거기 있을까
홍진숙의 '섬을 걷는 시간' 5월 16~22일 아트스페이스씨
3년 전부터 곳곳 걸으며 잎 채집 모노타이프 기법 되살려
  • 입력 : 2020. 05.05(화) 15:31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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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숙의 '잎(leafs)-비자림'.

은행나무, 칡나무, 생달나무, 으름, 환상덩굴, 팽나무, 산유자나무, 좀굴거리나무, 박주가리…. 안덕계곡에서 그가 본 건 바람을 타고 스르르 땅에 내려앉았을 잎들이었다. 화면 안에 지그재그 자리잡은 그것들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태계를 증거한다. 무수한 생명 중에 어느 하나가 소멸된다면 평화로운 공생 관계도 어긋나버린다.

홍진숙 작가는 3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제주 '바당길'을 걸으며 그 잎들을 만났다. 1년 넘도록 이어진 시간 동안 260㎞ 구간을 누볐고 제주섬의 세밀한 표정들이 서서히 가슴 안으로 들어왔다. 특히 2018년부터는 나무와 잎들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나뭇잎의 형태를 통해 나무를 알아가며 자연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회화와 판화, 그림책 작업을 넘나들며 이 땅의 오래된 것들에 눈길을 둬온 그가 이달 16일부터 22일까지 제주시 중앙로 아트스페이스C에서 펼치는 17회 개인전 '섬을 걷는 시간'에 그 여정이 있다. 모노타이프 기법으로 나뭇잎과 고사리의 각기 다른 형태와 특색을 잡아내고 채색으로 살려낸 작품들이 나온다.

홍 작가의 발길은 민오름, 수목원, 항파두리, 왕이메, 제주도립곶자왈공원, 가파도, 안덕, 엉또폭포, 새섬, 영천악, 효돈, 오조리, 비자림, 동백동산, 서우봉까지 이어졌다. 그곳에서 채집한 잎들은 제주 자연이 '무한한 생명의 창고'임을 새삼 일깨웠다.

홍진숙의 '잎(leafs)-사색'.

"현재 제주에 자생하고 있는 식물들이 10년 후, 50년 후, 100년 후에는 과연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홍 작가의 물음은 단지 특정 생명체의 영속성에 대한 희구에 머물지 않는다. 거대한 자본의 논리 속에 땅과 바다가 뒤집히고 거꾸러지는 이곳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제주시 전시에 이어 9월 7~26일에는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갤러리 ICC제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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