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8)귤(하)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8)귤(하)
“나라에서 귤 나눠주는 본뜻 어디에 있나… 정말 한심하다”
  • 입력 : 2020. 05.04(월) 00:00
  • 편집부 기자 hl@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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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신에게 바치는 그 해 새 과일
제주인 최초의 초상화 귤밭 주인
제주 전통감귤 명맥도 유지 못해


#조선시대 귤 진상

국가는 부세(賦稅)로 운영된다. 조선시대 부세제도로는 전기·후기가 다소 차이가 있지만 17세기 이후 크게 전결세(田結稅), 군역세(軍役稅), 잡역세(雜役稅), 환곡세(還穀稅)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진상이란 임금이나 왕실을 위한 지방 수령의 의례적인 헌납을 의미하며 제주의 귤은 조선의 '천신(薦新)' 의례에 매우 중요한 진상품이었다. 그해 새로운 물건이 나왔을 때 먼저 종묘의 신위(神位)에 올리는 제례를 '천신'이라고 한다. 민간에서도 귤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굿 의례 시 신에게 바치는 과일로 감귤을 으뜸으로 여기는 것이다.

귤을 소재로 한 그림. 관덕정에 그려져있다.

조선 세종 이후 진상한 귤의 종류로는 감자(柑子)·유자(柚子)·유감(乳柑)·동정귤(洞庭橘)·금귤(金橘)·청귤(靑橘)·산귤(山橘) 등 7종이었다. 조선 중·후기에 이르면 귤의 진상은 체계화 되지만 바람, 비 등 계절의 기후에 따라 종류와 생산량이 다르다. 작황이 나빠 귤의 종류와 수효가 모자라게 되면 다른 것으로 대체했지만 아예 귤 종류가 누락되면 고을 수령들은 조정으로부터 죄의 처분을 기다렸다.

1601년 제주안무어사로 왔던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기록은, 귤 진상의 규모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제주목은 1년 24운(運)으로 귤의 수효는 유자 960개, 감자 2만9470개, 금귤 1420개, 유감 2800개, 동정귤 3040개, 산귤 540개, 청귤 530개, 당유는 결실에 따라 봉진되었다. 그리고 장화서(掌化署) 몫 진상은 세전(歲前, 설 이전)과 세후(歲後. 설 이후)로 나뉜다. 설 전에는 제주목이 유자 280개, 감자 500개, 금귤 1000개, 유감 700개, 동정귤 2000개였고, 설 이후에는 감자 500개, 산귤 500개, 청귤 2000개였다. 대정현은 유자 180개, 감자 530개, 금귤 500개, 유감 400개, 동정귤 750개, 청귤 50개. 정의현은 유자 175개, 감자 525개, 금귤 500개, 유감 390개, 동정귤 700개, 청귤 750개였다.

조선 후기가 되면 귤 진상은 체계적으로 정착돼 매해 2월령, 10월령과 11월령에, 귤을 진상했는데 천신용과 진상용으로 나누어 봉진하였지만 18세기·19세기가 되면 귤 진상의 규모가 점점 축소되면서 제주 민중의 귤 진상 부담이 줄어들었다.



#희귀한 귤에 상을 내리다

사물이 귀하게 되면 그만큼 가치가 올라간다. 제주목 다호촌(多好村, 지금의 제주공항 부근)에 사는 문명호(文明浩)라는 사람은 헌종 13년(1847) 9월 소문이 자자했다. 사연인즉슨 그 집안에 큰 귤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향기가 가지마다 가득하고 모양이 신기하게도 호로와 같은 귤이 열렸는데 그 수를 헤아려보니 56개나 되었다. 관청에서는 문명호를 불러 이상한 귤에 대해서 물었다.

"종자는 어디에서 얻어서 어느 해에 심었는가?"

향기가 강하고 모양이 독특해서 인기 있는 한라봉.

문이 대답했다. "심은 종자의 근본은 정말로 모르오며 지난해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귤의 생김새가 희귀한 품종이므로 관청에서는 그 귤을 '당감자'라고 잠정 결론을 짓고 양이 많지 않아 천신에 올릴 수효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귤의 예에 따라 익기를 기다려 한양에 올려보낼 계획이었다. 비록 그 나무가 한 그루지만 품종이 희귀한 귤인 만큼 각 과수원에 씨를 나누어 심도록 조치하고 귤나무 임자 문명호에게는 복호(復戶, 세금이나 부역을 면제해주는 일)의 혜택과 상을 주었다. 원래 법령에 당감자 8그루를 재배한 자에게 복호를 주도록 한 규정이 있어서 비록 한 그루였지만 그에 준하는 조치를 내린 것이다. 향기가 짙고 호리병 모양인 것으로 보아 병귤(甁橘) 같은데 오늘날 개량된 한라봉의 원조라고나 할까?



#귤밭 주인 초상화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는 매우 특별한 초상화 한 점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33호인 '귤수소조(橘수小照)'라는 제하의 제주인 초상화이다. 초상화의 크기는 68x35cm이며 비단에 채색으로 그려졌다. 화면 상단에 제목과 12줄의 화제(畵題)가 기록돼 있다. 그림은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큰 아들 미산(米山) 허은이 그렸다. 화제는 소치 자신이 썼다.

귤밭 주인 귤수 문백민 초상.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연사박물관 소장.

소치는 귤수(橘수)라는 제주 사람을 일찍이 알고 지냈는데 소치가 큰 아들 미산과 함께 세 번째 제주에 와 머물 때 귤수가 초상화를 부탁하러 숙소에 찾아 온 것이다. 이때 미산이 그림을 그리고 소치 자신이 화제를 쓴 것이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 귤수는 본관이 남평(南平) 문(文)씨이고 이름은 백민(百敏)이다. 1810년(순조 10)에 나고 1872년(고종 9) 향년 63세로 타계했다. 자는 공무(公武), 호는 귤수이다. 가문에서 전해오는 말로는 제주 성안의 호장(戶長) 집안이었는데 나라에 이바지함이 커 애월 고내봉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귤수의 아버지는 처순(處純)이고, 귤수는 아들 우식(佑式) 한 명을 두었다. 초상화의 주인공 귤수는 제주성안에서 천 그루나 되는 귤 과원을 소유한 부호(富豪)였다. 소치가 추사를 만나러 큰 아들을 데리고 세 번째 입도한 시기에 귤수가 초상화를 부탁했던 것이다. 귤수의 초상화는 제주인을 그린 최초의 초상화이다.



#황감제(黃柑製)

해마다 제주도에서 진상하는 노란 귤을 성균관과 사학(私學) 유생들에게 내리고 실시하던 과거를 황감제라고 한다. 조선 후기 선비 윤기(尹기, 1741~1826)가 이 황감제를 표현한 시가 있다. '제주(濟州)에서 진상하는 감귤은 1차·2차·3차에 걸쳐 운송된다. 귤을 종묘(宗廟)와 경모궁(景慕宮)에 올리고 나면 즉시 성균관에서 과거시험을 치렀는데, 이때 내시가 한 가자(架子)의 감귤을 가지고 온다.' 황감제를 지켜 본 윤기는 감귤을 먹으려고 질서가 엉망인 시험장의 풍경을 한심해서 탄식하고 있다.

"유생들이 시험장에 들어가고 시제(試題)가 내걸리기 전에 하급관리가 감귤 상자를 받들어 섬돌 머리에 내놓고서 유생들에게 나눠주는데, 나이 어린 유생들과 종자(從者)들은 아무리 금해도 듣지 않고 먼저 차지하려고 손으로 움키고 발로 차곤 한다. 그래서 하급관리가 반으로 나누거나 넷으로 쪼개어 손을 높이 들어 공중으로 던져 뿌리기도 하는데, 그러면 또 앞다투어 달려가서 줍고 서로 밀치며 빼앗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조금이라도 몸가짐을 삼가는 유생들은 모두 그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니, 선비들의 습성이 참으로 말이 아니다. 나라에서 감귤을 나누어주는 본뜻이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말 한심하다."



#전통이 단절된 제주귤

시대가 변했지만 귤의 인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최근 귤나무는 전 세계 10억 그루가 지구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21세기 들어 감귤 생산량은 10억t에 이르고 있다. 20세기 초반, 광고계의 거물 앨버트 래스커(1880~1950)는 오렌지 주스를 발명했는데 미국의 오렌지 주스 썬키스트(Sunkist)의 모토가 되었다. 온주(溫州) 밀감은 중국 절강성에서 300년 전 일본 규슈(九州)로 들어와 재배되면서 씨가 없는 감귤로 개량되었다. 일본산 워싱톤 네블은 1909년 경 서귀포 출신 김진태가 시작했고, 온주밀감, 네블, 하밀감(夏蜜柑) 또한 일본인 미네(峯) 某씨와, 조선인 박영효(朴泳孝)가 일제 강점기인 1910년경 전파하면서 대정 9년(1920)부터 매년 7000~8000 본의 귤나무가 일본에서 제주로 유입되었다. 현재 제주 전통귤은 그 명맥도 유지 못하고 있는데 로컬리티의 비극이라고나 할까.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비극은 일어나고 있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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