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인간으로 빚어낸 '그들의 서사'

종이 인간으로 빚어낸 '그들의 서사'
제주 이유미 작가 종이죽 이용 인체 조각전
  • 입력 : 2020. 05.03(일) 17:00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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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기다리다'(2019).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이인지 어른인지 선뜻 분간하기 어려운 얼굴이 보인다. 가느다란 인체의 그것들중에는 얼굴이 두 개인 형상도 있다. 이유미 개인전 '그들의 서사(敍事)'에 펼쳐진 '종이조각'들이 그렇다.

이유미 작가는 이화여대와 동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했고 미국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서 공부했다. 2012년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제주와 인연을 맺었고 지금은 제주시 구좌읍에 정착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시 중앙로 KEB하나은행 지하1층 돌담갤러리에서 지난 1일부터 시작된 그의 개인전에는 2018년 이후 제작된 신작이 나왔다. 종이죽으로 인체조각을 해온 이 작가는 이번에도 종이를 주재료로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시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업에 끌어온 종이는 이 작가의 아버지가 붓글씨를 쓰던 화선지에서 비롯됐다. 먹물이 배인 한지를 물에 풀어 회색의 종이죽으로 만든 뒤 거기에 아교를 혼합해 형상을 빚는다. 철사로 뼈대를 세운 다음에 종이죽을 한 점 한 점 붙여가며 인간의 모습을 완성시켰다.

이유미의 '그들의 서사-나의 왼쪽'(2019).

전시작 '기다리다'는 두 얼굴의 '종이 인간'이다. 샴쌍둥이에서 빌려온 그같은 형상은 이율배반적인 우리네 모습이면서 고뇌에 찬 인간, 혹은 천수천안의 관음상처럼 다중적 의미를 지닌다. '그들의 서사' 연작 중 하나인 '나의 왼쪽'은 머리와 팔, 다리 일부가 잘려나갔다. 한쪽을 잃어버린 몸은 감정의 절제이자 다양성의 거세이면서 뿌리를 잊고 싶은 마음을 은유한다. 작가 개인의 사적인 사연은 차츰 제주4·3과 같은 역사적 사건으로 확장되어 간다.

전시는 이달 20일까지. 문의 064)757-2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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