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와 문학] (50) 현기영 장편 '바람 타는 섬' ②

[제주바다와 문학] (50) 현기영 장편 '바람 타는 섬' ②
"밀물과 썰물의 순환 같은 해녀 일생"
  • 입력 : 2020. 04.24(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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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하는 제주 해녀 사이로 돌고래가 헤엄치고 있다. '바람 타는 섬'은 순환하는 해녀의 일생이 사계절을 닮았다고 했다.

돌고래떼와 공존하는 장면
아낌없이 내어주는 바다
해녀 생애도 사계절 닮아

얼마 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바닷가에서 실험이 진행됐다. 해녀와 돌고래의 공존을 위해 머리를 맞댄 자리였다. 바다에 들었을 때 주위를 맴도는 돌고래들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해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해녀들이 물질할 때 음파를 내보내 돌고래의 접근을 막는 등 해녀도 살고, 돌고래도 사는 방안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쓴 현기영의 장편소설 '바람 타는 섬'(1989)에도 물질 장면에 돌고래들이 나타난다. 돌고래떼의 등장에 물속을 내달리는 수많은 방어떼들이 한순간 사납게 끓어오르고 잔 고기들이 물위로 팔딱팔딱 튕겨오른다. 검은 몸의 돌고래떼를 보자 해녀들은 일제히 테왁을 손으로 두드리며 외친다. "물 알로(아래)! 물 알로!" 주인공 여옥은 정신이 아뜩해진다. 돌고래들은 허공에 껑충껑충 솟구친 뒤 바다로 곤두박질치다 거짓말처럼 얌전하게 사라진다.

놀란 여옥에게 해녀 순주가 한마디 한다. "에이, 무섭기는, 우리보고 반갑다고 인사하는 건데. 돌고래는 좀처럼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더라."

우리의 바다밭은 계절마다 다른 생산물을 내어준다. 파란 파래떼가 뒤덮는 봄에는 미역과 톳이 나온다. 여름 바다엔 천초와 감태, 가을과 겨울의 찬물에는 살찐 소라와 전복이 있다.

현기영 소설가는 그 바다밭을 일구는 해녀들에게도 아기 잠녀, 중군 잠녀, 상군 잠녀, 노인 잠녀로 이어지는 사계절이 있다고 했다. 20여 년 동안 전성기를 누리던 상군 잠녀들은 기력이 떨어지면서 차츰차츰 얕은 바다로 뒷걸음질 친다. 어느 시기가 되면 아기 잠녀들이 물질하는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들의 생애다.

"밀물과 썰물의 순환, 어려서 썰물 타고 먼 바다로 나아갔다가 때가 차면 다시 밀물에 밀려 노인으로 돌아오는 잠녀의 일생, 밀물의 끝은 죽는 자의 마지막 숨을 덮어주고, 썰물의 시작은 태어나는 자의 최초의 숨을 열어주었다." 이 문장처럼 해녀들은 섭리대로 살다 가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생태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을 깨지 않는 일이다.

소설에서 또 다른 해녀인 정심의 사연은 그들의 삶이 곧 '함께 살기'를 배워가는 과정임을 드러낸다. 정심은 아름다운 산호 숲에서 손바닥만한 전복 하나를 수확하자 욕심이 나서 다시 깊은 물로 향한다. 조류에 흐느적 거리는 해초 사이로 전복이 다시 눈에 띈다. 빗창을 들어 전복을 캐려 하다 그만 바닥을 디딘 발이 휘청거린다. 전복은 빗창을 문 채 입을 꽉 닫아버렸고 정심은 손목에 매인 빗창 끈을 풀지 못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날 뻔했다. 울컥울컥 물을 토해내고 간신히 숨을 뗀 정심은 여덟 길 깊은 물속에서 잡았던 전복이 실은 놋잔이더라고 했다. 바다는 그렇게 말없이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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