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55)나는 모른다고 한다-한기팔

[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55)나는 모른다고 한다-한기팔
  • 입력 : 2020. 04.16(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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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른다고 한다

모른다고 모른다고 한다

바람 앞에서

모른다고 하고

풀잎 소리에도 모른다고 한다



그 난리 통에

나는 열 살 박이 소년

산사람들이 내려와

반장집이 어디냐 구장(區長)집

이 어디냐 물으면

모른다고 하고

토벌대(討伐隊)가 와서

이 동네에는 산으로 산 사람이

없느냐고 물으면

모른다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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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른다고 한다'에 등장하는 자전적 화자는 '열 살 박이 소년'이다. 제주4·3의 난리 통에 무력한 소년은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다만 모른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납득할 수 없는 4·3의 폭거는 소년을 점점 그 현실로부터 도망치게 만들었다. 소년은 생존하기 위해 회피의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부당한 사회적 원인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끼지만, 이 상황을 개인이나 집단의 힘으로 개선할 가능성이 없을 때 '한의 정서'가 나타난다. 이렇게 작품 속 어린 화자의 트라우마는 '한(恨)'의 성격을 띤다. 비록 개인에게서 발현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이미 집단적 차원의 폭력이자 트라우마라는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희생양으로 등장하는 자전적 화자가 '열 살 박이 소년'이라는 데서, 그 비극은 독자들에게 더욱 무겁고 깊게 다가간다. 항거불능의 집단적 폭거는 도저히 종식시키거나 개선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이로 인해 어린 화자는 '모른다'라는 회피의 방식으로 그 상황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국을 위해 불가리아로 쳐들어가 무고한 민간인을 처참하게 학살한 조르바는 오그레에게 말한다. "조국이 어디든 우리 모두는 한 형제예요. 조국이 있는 한 인간은 짐승신세를 면하지 못합니다." 조국의 이름으로 전쟁에 가담해 적국의 시민을 학살한 조르바의 깨달음은 뒤늦은 것이었으나 통렬하기 그지없다. 모든 인간은 조국보다 우선한다. 조국이 내세우며 민간인 학살을 강제하는 정부와 권력자는 죄악이다. 4·3은 겨우 시작일 뿐이다. 일제강점기와 전쟁과 민주화운동을 지나면서 국민을 향해 수없이 자행된 국가폭력들에 대한 사과는 시작도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제대로 된' 사법부의 사과도, 경찰의 사과도, 군대의 사과도, 국가의 사과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 끌려가고, 그들에게 죽어간 사람은 그렇게나 많았는데도. 책임은 넓게, 사죄는 깊게. 그 후 용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는-결국 우리의 화두로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 국가폭력에 희생된 모든 영령의 명복을 빈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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