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신흥1리' 마을지 어르신들 사연으로 엮다

서귀포 '신흥1리' 마을지 어르신들 사연으로 엮다
제주연구원 제주학센터 첫 마을기록화 사업으로 발간
고령자 구술채록 자료 바탕 침몰 일본 귀국선 이야기 등
기존 향토지 제작 방식 탈피 아래로부터의 마을지 추진
  • 입력 : 2020. 04.14(화) 19:12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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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1리 마을지 구술에 참여한 어르신들. 사진 아래 오른쪽 맨 끝은 마을 이장이다.

제주 마을 사람들의 생애사에 기반한 마을지가 만들어졌다.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가 첫 마을기록화사업으로 묶은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1리 마을지다.

이 책자는 크기부터 편집 방향까지 기존 마을지와 여러모로 다르다. 종전 마을지가 자연·지리, 유적, 설촌과 지명 유래, 행정, 교육, 종교, 산업, 민속 등으로 나눠 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담아냈다면 현혜경 박사팀이 조사와 제작을 맡은 이번 책자는 거기에 사는 이들의 생활사를 마을 기록의 핵심으로 잡았다. '아래로부터의 마을지'인 셈이다.

이 마을지 '서문'에 써놓은 제주 마을지의 역사에 그 배경이 녹아있다. 이에 따르면 오늘날과 같은 마을 향토지는 1910년대 일본 관학자들에 의한 제주 마을조사가 시작되면서 나타난다. 80년대 중반 이후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펴낸 마을지들이 대개 그같은 구조를 따르고 있고 오늘날까지 그 영향이 남아있다. 1990년대는 편찬위원회가 조직되며 향토지 생산이 갑절 늘었고 2000년대 들어서면 지식인과 마을 유지 중심의 기록문화가 더욱 공고해진다. 이른바 전문가 중심의 편찬위원회는 마을 자료수집 계기도 되었지만 한편으론 마을과 관련없는 일반적인 내용이 실리는 일도 벌어진다.

이번 신흥1리 마을지는 약 1년에 걸쳐 진행된 500여 쪽 분량의 마을기록화사업 구술 채록 자료가 바탕이 되었다. 1930년대생 어르신 12명과 마을 이장이 풀어내는 생생한 이야기를 정리해 그들의 기억을 통해 신흥1리의 변모 과정과 삶의 풍경을 그릴 수 있도록 했다.

신흥1리 어르신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현혜경 박사팀이 제작한 마을 옛 지명 지도.

신흥1리 옛 지명으로 열리는 마을지는 침몰된 일본 귀국선, 산모가 먹던 '궁둥 조배기', '돗추렴' 풍속도, 전분공장 이야기, '수눌음'으로 완성된 초가집 짓기, '비께'(수염상어)가 등장하는 물질 사연, 일제강점기 교육, 4·3사건으로 인한 학교 수난사, 무속신앙, 물통, 마을 텃밭, 신흥1리 감귤 '남진해', 비 오면 드러나는 신비로운 어위폭포 등까지 닿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어르신들의 말 속에 마을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조선시대 정의현 이전 고려시대에 토산현이 있었고 현 중심에 '흥'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흥'이 오늘날 신흥1리 지경인 것 같다고 말한다. 해방 직후 일본인들을 싣고 자국으로 돌아가던 배가 신흥1리 앞바다에서 미군으로 추정되는 공군기에 의해 폭격을 받고 침몰한 사건도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 있었다.

말미에는 '사진으로 보는 주민생애사'를 실었다. 3명의 어르신이 꺼내놓은 옛 사진은 개인을 넘어 해녀회의 변천, 결혼과 장례 풍습, 여성 교육 등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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