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와 문학] (44) 강덕환 시 '억새' 연작

[제주바다와 문학] (44) 강덕환 시 '억새' 연작
"섬과 바다 사이 끝끝내 물리칠 어둠"
  • 입력 : 2020. 03.13(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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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가 있는 제주 야경. 강덕환 시인은 흔들려도 일어서는 섬의 억새처럼 분단조국의 금을 넘기 위해 지치지 말고 나아가자고 노래했다.

유배일번지 섬의 역사 속
슬픈 분단의 금 넘는 바람
“평화로 어우러져 열리리”


제주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 이 섬에서 눈을 들면 마주하는 한라산처럼 바다는 제주섬의 존재를 증명한다. 제주 강덕환 시인도 바다를 본다. 그 바다 너머에 다른 세상이 있다. 그것은 남과 북을 이어줄 물길이다.

'바다를 건너려다 문득/ 팔 벌려 가로 막는 수평선/ 한라산 첫눈보다 먼저 달려와/ 그을린 섬을 씻어도/ 쓰러져 밟히고 일어서서 잘리는/ 허연 게거품의 슬픈 노동 일지라// 들도 없이 산이 되는/ 목타는 비탈/ 바람에게 배운/ 그르럭 그르럭 솥창을 긁는 허기진 노래가/ 강이 되고, 구름이 되고/ 백성이 되고/ 평화로 어우러져/ 드디어 열리는 이 땅의 개벽!' ('억새·1' 중에서)

풀잎소리 문학동인으로 1992년 낸 강 시인의 첫 시집 '생말타기'는 당시 출판사 이름(오름)처럼 절반을 덮은 초록 표지 위로 하얀 하늘이 떠올라있다. 발문을 쓴 오성찬 소설가는 시집에 흩어진 시편들에서 '가난하고 슬픈 농촌의 현실과 제주4·3으로 멍든 가슴'을 먼저 읽었다. 그것들을 주조로 시인은 '역사를 재우고 백의로 종군하는 유배일번지'('억새·4')인 이 섬을 내달려 '말갈기 휘날리며 만주벌판 달리는'('생말타기') 꿈을 꾼다.

한 편의 서사가 담긴 표제시는 이 시집의 주제를 드러낸다. 운동장을 빼앗긴 아이들이 교실 한켠에서 생말타기를 한다. '쟁겸이 보실보실개미또꼬망' 가위바위보로 편을 가르고 등을 굽으면 아이들은 어느새 독립군이 된다. '준마가 아니고서는/ 건널 수 없는 식민지의 강/ 아아 드디어 시작종이 울리는 구나/ 우리들의 현실은 슬픈 분단조국/ 그래도 가야지 쉬엄쉬엄'으로 이어지는 대목에 시인의 염원이 스며있다.

'억새' 연작은 김수영의 시 '풀'처럼 섬사람들의 생명력을 그려내고 있다. '자리젓에 콩잎쌈' 뭉쳐 먹어도 '흔들리진 않을거여'('억새·3')라는 겹겹의 다짐이 따른다.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잇겠다는 열망은 1947년 지금의 제주북초등학교에서 열렸던 3·1절 기념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 최대 인파가 모인 그날 제주 사람들이 외친 구호 중 하나는 '3·1정신으로 통일 독립 전취'였다. 4·3을 시로 붙들어온 시인은 4·3에서 통일을 봤다.

하지만 겨울은 길었다. '겨울에도 얼지 않고/ 무사한 것들은 대단하다/ 살아서 쉬임없이/ 꿈틀거리는 것들은 더욱 위대하다'('겨울나기')고 노래한 이유다. '섬과 바다 사이에서' 시인은 분단의 금을 넘는 바람이 지나치게 무모한 건 아니지만 새벽은 저절로(시에는 '어차피'라고 썼다) 오지 않는다고 했다. 바다와 맞닿은 섬에서 시인은 '끝끝내 건너야 할 밤'을 떠올린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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