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조수리서 1898년 '방성칠의 난' 고문서 햇빛

제주 조수리서 1898년 '방성칠의 난' 고문서 햇빛
12개 주제별로 묶인 '한경면 생활문화지'에 공개
민란 진압 제주창의소 발급 '영군장 임명 전령' 발굴
제주문화원 "당대 문서로 희귀하고 보존가치가 상당"
  • 입력 : 2020. 03.10(화) 18:45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1898년 방성칠의 난 당시 김대욱을 조수리 영군장으로 임명하는 전령.

1898년 제주 방성칠(房星七)의 난에 얽힌 문서가 발굴됐다. 제주시 한경면 주민자치위원회는 최근 발간된 '한경면 생활문화지'(2019)를 통해 이를 공개했다.

조수1리 향토관이 소장한 해당 고문서는 민란을 진압하기 위해 만든 제주창의소(濟州倡義所)가 발급한 '영군장 임명 전령'이다. 한지에 쓰여진 이 전령에는 "1898년 무술년 2월에 제주창의소에서 조수리 김대욱(金大旭)을 조수리 영군장으로 임명하니 가벼이 여기지 말고 임무를 수행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서 무술년은 제1차 제주민란으로도 불리는 방성칠의 난이 일어났던 해다. '방성칠의 난'은 1898년 2월 장두 방성칠과 당시 대정군 중면 광청리(光淸里) 주민 수백여 명이 제주목 관아에 몰려가 가혹한 세제 징수의 시정 등을 요구하는 소장(訴狀)을 제출한 것을 계기로 민란으로 확산됐다. 방성칠이 이끄는 부대는 애월읍 귀일리에서 토벌군에게 궤멸되고 방성칠도 4월 4일에 처단되면서 민란이 평정된다.

그 무렵 제주에 유배왔던 김윤식의 '속음청사'를 보면 송두옥 등이 창의군(倡義軍)을 모아 난군(亂軍)이 장악했던 제주읍성을 다시 탈환한다. 이번 전령 속 제주창의소는 '방성칠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송두옥 등이 설치한 창의소를 일컫는다. 문서 말미에는 '이 경우 조수와 낙천리민을 일체 영솔(領率)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한경면 생활문화지' 필진 중 한 명으로 관내 15개 마을을 돌며 고문서를 찾아내 우리말로 풀어낸 백종진 제주문화원 사무국장은 이 자료에 대해 "제주창의소에서 제주도 전역에 걸쳐 창의군을 소집하면서 창의군의 지도부에서 조수리 출신 김대욱에게 조수리와 낙천리 창의군의 통솔권을 내려주는 내용으로 '방성칠의 난' 당대의 문서로 희귀하며 보존가치가 상당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한경면 생활지'에 실린 1973년 한경면 보리증산전진대회.

'방성칠의 난' 관련 문서를 세상 밖으로 꺼낸 '한경면 생활문화지'는 제주문화원(원장 김봉오)이 기획을 맡은 새로운 형태의 마을지다. 900여 쪽에 걸쳐 한경면 사람들의 생활상을 유적, 비석, 문서, 공동자원, 길과 집, 생활문화 시설, 도구, 재일제주인 생활상, 원로구술 등 12개 주제로 나눠 살폈다.

'문서'편에는 고문서 말고도 금등·한원·조수1·저지리 등 4개 마을리사무소에 소장된 1960~1980년대 현대 문서를 조사정리한 내용이 들었다. 1963년과 1970년 새마을사업에 동원된 마을사람들의 이름과 업무내용,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쥐잡기 사업에 따른 한경면 리동별 교육계획 시달 등 생활사의 일단이 드러난다. 1926년부터 2006년까지 작성된 '용당리 주전동 장막계'는 제주 마을의 공동체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문서다.

1970년대 용수리 모내기.

한경면 관내에 소재하는 비석도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총 554기로 파악됐는데 가장 이른 연대는 1757년 5월 수월봉에 세운 '영산비'였다. 마을 소식을 알리던 벽보판과 더위를 피해 쉬었던 쉼팡도 주목해 마을의 대소사를 공유하는 여론 형성의 기능까지 담당하던 중요한 생활 문화로 그 가치를 알렸다. 1960년대 이후 마을별로 대표성을 띤 생활밀착형 업종이던 점빵·상점·이발소·정미소·빵집·목욕탕·서점·양복점·사진관·예식장·슈퍼마켓 등의 변화상도 기록했다. 맨 앞장에는 70년대 이후 최근까지 '사진으로 보는 한경면' 70여 점을 실었다.

조은호 주민자치위원장은 발간사에서 "한경면은 제주도 곳곳이 난개발과 인구 유입으로 급속한 변화를 겪는 와중에도 태고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을 유지해 마지막 남은 제주도라는 극찬을 받으며 가장 살고 싶은 마을로 손꼽힌다"며 "'한경면 생활문화지'가 우리 후손들에게 한경면의 가치와 자긍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우리 고장의 향토문화를 연구하는 자료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비매품.

1980년 한경면 지역정화운동 추진 결의대회.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22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