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철의 월요논단] 18세의 신인 정치인을 환영하면서

[양영철의 월요논단] 18세의 신인 정치인을 환영하면서
  • 입력 : 2020. 01.20(월)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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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만 18세이면 정치에 참여해 투표할 수 있다. 이를 놓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다. 이유는 세상사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걱정이야 말로 이들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소리다. 학력과 연령을 연구한 학자에 따르면 1970년대 대학 졸업한 사람과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의 수준이 같으며, 그 당시의 박사는 현재의 중학교 3학년 수준의 학력이라고 한다. 만 18세이면 어느 기성세대 못지않게 세상사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인정해 수십 년 전부터 선진국 대부분은 18세 국민에게 투표권만 아니라 심지어 피선거권도 부여하고 있다. 민주주의 출발지인 그리스는 만 16세 국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한지 오래다. 때문에 이번 우리나라에서 만 18세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것은 결코 획기적이거나 진보적 정책은 아니다. 위 사항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도 이들을 열렬히 환영해야 한다.

첫째는 기성세대의 혼탁한 정치와 사회에 청량제 역할의 기대 때문이다.

식물국회, 동물국회 등 한국에만 만 있는 용어일 정도로 정치가 엉망이다. 지방정치도 별반 차이가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수없이 법과 제도를 만들었지만 그들의 행위는 더욱 구제불능으로 가고 있다. 만 18세 55만, 19세 67만 유권자들의 눈에는 정치하면 싸움의 터로만 평가한다. 이 평가가 20대의 670만 유권자와 결합하여 한국의 무질서하고 비생산적인 정치판을 정상화 시킬 수 있는 마지막 희망 때문이다.

둘째는 미래에 대한 결정권을 미래를 책임질 이들에게 부여하는 의미다.

청년을 미래요, 중년은 현재이며 노년은 과거다. 사회속도가 쉼 없이 변화하고 있다. 내일이 곧 미래라 할 정도로 변화 속도가 빠르다. 10~20년 후 사회는 디지털사회, AI 사회 등으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가상세계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이끌어 갈 중추적 세대가 현재의 중년이나 노년층이 아니고 현재의 18세 나이 또래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곧 닥쳐올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세대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여 그들의 사회인 미래에 대한 정책결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셋째는 비례성 원칙이다.

비례성이란 대표성이라고도 말한다. 인구 만큼 그들의 의견이 사회와 정치에 반영돼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10대 인구가 전체 인구의 10%인 약 500만 명 정도다. 비례성은 모든 정책과 예산의 10%가 이들을 위하여 배정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치 않다. 마을마다 건립되어 있는 마을회관, 노인회관 등등은 마을마다 심지어 동네마다 있지만 청소년 회관은 읍면단위는 고사하고 시단위에도 하나 없다. 부모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오락실이 유일한 그들만의 회관인 것이다. 한마디로 무시당하고 있는 세대다.

18, 19세 유권자 130만 명은 우리나라 선거 양상으로 보면 대통령 당락까지 결정할 수 있다. 우리는 이들의 합리적인 매의 눈에 의한 선거에 의해 정치가 정화되고, 미래를 위한 투자가 우선되는 사회를 기대하기 때문에 이들을 두 손 벌려 환영할 수밖에 없다. <양영철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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