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종의 백록담] 마오쩌둥이 참새 잡듯이 했다간…

[현영종의 백록담] 마오쩌둥이 참새 잡듯이 했다간…
  • 입력 : 2020. 01.06(월) 00:00
  • 현영종 기자 yjhye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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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쓰촨성(四川省)을 시찰하던 마오쩌둥(毛澤東). "저 새는 해로운 새다. 잡아 없애라"는 지시를 내렸다. 낱알을 쪼아 먹는 참새들을 목격한 직후다. 그 유명한 '참새 소탕작전'의 시작이다.

인민의 곡식을 빼앗아 먹는 '계급의 적'이자 '해로운 동물'이란 낙인과 함께 대대적인 박멸 운동이 시작됐다. 그해 4월엔 베이징에 '참새 섬멸 총지휘부'가 만들어졌다. 중국 전역에서 대대적인 박멸 작전이 펼쳐졌다. 새총과 그물, 독극물 등이 동원돼 1958년 한 해에만 2억1000마리의 참새가 '소탕'됐다. 얼치기 지식인과 행동 대원들도 가세했다. 국영 연구기관은 "참새 1마리가 매 년 곡식 2.4㎏을 먹어 치운다"며 작전을 독려했다. 반대·우려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수확이 늘기는 커녕 오히려 큰 폭으로 줄었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최악의 흉년이 이어졌다. 1958년 한해에만 수백만명이 굶어 죽었다. 1961년에도 쌀 생산량 감소로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했다. 3년간 굶어 죽은 이들만 4000만명에 달했다. 참새들이 잡아 먹었던 해충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비롯된 비극이었다.

비난이 고조되면서 참새 소탕작전은 중단됐다. 당시 소련 연해주에서 참새 20여만 마리를 긴급 공수, 들판에 방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오쩌둥은 참새 소탕작전의 실패로 권력의 2선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비극을 중단시킬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상황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아챈 일부 간부들이 작전 중단을 권유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공산당 중추 간부들까지 가세하며 압박한 후에야 작전은 끝이 났다. 마오쩌둥도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인민 4000만명이 굶어 죽은 이후다. 여파는 1962년까지 계속돼 342만명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다. 참새 소탕작전으로 인한 대기근은 '역사상 최악의 기근'으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지역 현안을 놓고 여론이 극명하게 갈린다. 제2공항 건설사업이 대표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지역경제 발전과 함께 제2공항 건설을 지역 최고 현안으로 꼽는다. 일부에선 "혼잡한 제주공항을 보완하기 위해 제2공항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조속히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측에선 "현재의 제주공항을 확장하면 충분하다. 제주 섬 전체의 환경 수용력 또한 한계에 달했다"며 반대한다. 사업을 책임지는 국토부와 제주자치도는 "사업 추진이 이미 결정됐다"며 갈등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제2공항 같은 대역사(大役事)의 효용성을 일반 민중이 판단하기엔 무리다. 현재의 상황은 물론 향후 20~30년 동안의 모든 변화가 예측·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필요한 정보를 가감없이 알리고,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제반 상황과 여건을 거듭 살피는 작업도 소홀해서는 안된다. 충분히 살피고, 적극 알리는 노력없이는 문제를 풀어 갈 수 없다. 역사를 그르치는 우를 피하기 위해서도 더욱 절실하다. <현영종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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