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와 문학] (36) 김관후 시 ‘섬곶 떠난 내 아비’

[제주바다와 문학] (36) 김관후 시 ‘섬곶 떠난 내 아비’
“절망의 포구여도 이 땅 떠날 수 없다”
  • 입력 : 2020. 01.03(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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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본 제주 바다. 김관후 시인은 바다에 수장된 제주4·3의 사연을 끌어내 통일로 가는 문학을 노래하려 했다.

온평 바다에 뜬 나무상자
평화롭게 열린 섬의 역사
수장된 아픈 언어 엮어야


그의 시집에 흩어진 시편을 시간 순서대로 다시 묶는다면 '혼인지'가 맨 앞에 놓일 듯 하다. 세 신인들이 거룩한 이 땅의 흙더미에서 태어났다. 삼성신화에 등장하는 고·양·부을나를 말한다. 그들이 날짐승과 들짐승 길들이며 살던 어느 날, 온평 앞 바다 하얀 파도 위로 나무상자가 둥둥 떠온다. 인류가 이 섬에 발을 디딜 무렵의 제주는 더없이 평화로웠다. 시인이 벽랑국 공주로 불리는 외래인이 당도한 뒤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어요'라는 시 구절을 갑작스레 배치한 건 훗날 또 다른 외세에 의해 이 섬에서 벌어진 참사를 예고하려는 의도다.

제주 김관후 시인(1947~ )의 시집 '섬곶 떠난 내 아비'(1996)는 표제시를 포함해 '무자년'으로 은유되는 제주4·3에 얽힌 시로 채워져있다. 섬 구석구석 그날의 비극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지만 바다는 기나긴 시간 그 비밀을 삼켜온 공간으로 그려진다.

'아비 죽음 가슴팍에 껴안고/ 협죽도 피뿌리는 절망의 포구/ 그 주검들 사이에 서서/ 섬곶 떠난 내 아비 부른다/ 사랑은 저 멀리 아비와 함께 묻혔는데/ 결코 이 땅 이 밤 떠날 수 없어/ 파도에 밀린 주검들 하나 둘 헤아린다'('섬곶 떠난 내 아비' 전문)

바다밭엔 저마다 이름이 있었다. 모자반이 많은 눈목곶, 고사리가 나풀나풀 자라는 고사리곶, 물 속이 깊은 앞곶, 작은 관탈 서북쪽 뒷곶…. 그 정겨운 명칭들이 사라지듯 아비는 바다밭에서 숨을 거뒀다. 이어 싸나, 이어 싸나하며 섬 떠난 아비를 찾아 이여도로 가려 하지만 그 길은 험난하다.

아비는 시인의 개인사를 넘어 섬을 할퀸 역사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풍파에 식구 모두 몰살당한 게 어디 한둘인가. 속병 앓다 세상 뜬 아우, 고문으로 말을 잃어버린 사촌형, 밀항선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고모, 오랜 세월 천식 앓는 외숙모. 시집에 불러낸 인물들의 사연은 특정한 몇몇이 아니라 너와 나,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이들이다. 이호해수욕장, 정방폭포, 표선해수욕장 등 제주 관광지마다 4월의 기억이 스며있는 일과 다르지 않다.

"우상은 '아비'를 수장시켜 지금까지 물고기 밥이 되게 하였다. 바다 깊은 곳에 뛰어들어 '아비'의 아픈 언어를 엮어 내야 한다. 그 시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물 속까지 던져졌는가." 시집 말미에 시인이 덧붙인 글 중 일부다. 이 겨레가 질긴 역사의 목숨을 이어오면서 제주섬에는 너무나 큰 한이 쌓였다는 시인은 깨어진 남북의 관계가 통일을 향해 새롭게 열릴 때 그 아픔을 싸매고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4·3의 현장에서 얽힌 실타래를 푸는 일이 통일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시인의 말, 오늘날도 유효해 보인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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