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43)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43)
  • 입력 : 2019. 12.19(목) 2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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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15-1. 화려한 불꽃 뒤, 어둠



이튿날, 한민족신문에 '제주 하나도 프로젝트의 음모'라는 제목으로 특종 기사가 떴다. 장석규는 기자회견을 열고 두목회의 실체와 그 멤버들이 어떻게 도정을 농단했는지 사안별로 자료를 내보이며 폭로를 했다.




종필은 서류 봉투를 가슴에 껴안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숨 돌릴 여유도 없이 의자에 앉자마자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하나씩 설명했다.

"자, 이거 봐. 이게 전형진이 랴오닝 그룹에서 매달 받았던 월급 서류야. 이건 전형진 이름으로 된 중국 은행의 계좌 송금 영수증이고, 이건 랴오닝 해외개발운용업체인 랴오닝 AD&F의 임원 명단이야. 봐. 여기 사진도 있지?"

용찬은 서류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전형진이 랴오닝 그룹의 월급을 받는 자문위원으로 제주도의 부동산을 판매하는데 관여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는 자료였다. 그리고 그의 부인 이름으로 되어 있는 북경의 고급 아파트 사진과 등기 서류까지 있었다.

"나쁜 놈. 헌데 형, 이걸 어떻게 구했지?"

"임마, 그건 일급비밀이지. 취재원 보호해야 하는 거 잘 알잖아?"

목숨 걸고 이런 서류를 빼낼 수 있는 것으로 봐서 아직도 종필이 중국 애인과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을 뒤엎을 수 있는 특종 감이었다.

"헌데, 이거 한꺼번에 까발리기엔 사건이 방대하니까 단계별로 합시다."

"뭘 어떻게 하자는 건데?"

"우선 일차적으로 하나도 프로젝트의 실체를 알리는 거예요. 예전에 기사 써놓은 것 있으니까 터트리면 꼼짝 못 해요. 내일 조간에 기사 뜨면 거기에 맞춰 두목회의 농단에 대해 폭로하는 기자회견 하고. 그 다음에 전형진이 꼼짝 못 할 이 서류들을 공개하는 거죠."

용찬의 말에 종필은 시계를 보며 당황스런 표정을 보였다.

"이거 어쩌지? 2시에 기자회견 하기로 했는데?"

"회견 연기는 기자실에 전화 한 통이면 돼요. 내가 내일로 변경해 놓을 테니까, 형은 아버지 만나서 양해 구해요. 두목회의 실체 규명에 초점 맞추고 그들이 어떻게 도정을 농단했는지 사례별로 하나하나 정리해서 기자회견 자료를 만들어요. 그 사이에 난 이 자료들 들고 서울 가서 신문사 데스크를 만날게요."

"한꺼번에 하지 않으면 그놈들 저항이 만만치 않을 텐데?"

"발뺌하려고 무슨 수든 쓰겠죠? 지방신문은 차단할 게 뻔하고, 중앙 신문사에 제공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우리 신문사는 싹수가 노래서 안 되고 진보 언론계에 아는 선배가 많으니 알아볼게요."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종필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왕금산이 새끼 악에 받쳐 길길이 날뛰는 모습 선하다. 흐흐흐"

삽화=고재만 화백



이튿날, 한민족신문에 '제주 하나도 프로젝트의 음모'라는 제목으로 특종 기사가 떴다. 권용찬이 한민족신문 기자와 인터뷰 형식으로 폭로한 기사였다. 제주 사회뿐만이 아니라 경향 각지가 발칵 뒤집혔고 중앙의 언론계로 부터도 많은 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계획대로 장석규는 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목회의 실체와 그 멤버들이 어떻게 도정을 농단했는지 사안별로 자료를 내보이며 폭로를 했다.

그날 오후부터 제주 언론에서는 속보가 터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중앙의 메이저 언론에서까지 '삼미동 차이나타운의 검은 뒷거래', '두목회의 도정 농단 실체 드러나다', '전형진 전 지사, 중국 자본에 취했나?"등의 제목으로 신문, 방송사마다 연일 이슈를 재생산해냈다.

그러나 그냥 앉아서 당할 두목회 멤버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조직적인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나, 자네 모친의 고모 아들이야. 삼촌뻘이지."

기사가 나간 다음날 오후, 신문을 보고 알았다며 정장을 한 중년의 사내가 용찬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명함에는 탐라기업사 계장 김시헌이란 이름 밑에 전화번호만 적혀 있었다. 초면인데도 대뜸 반말로 자기소개를 하고는 이미 뒷조사를 한 듯 용찬을 치켜세우더니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자네가 육지 물만 먹어서 여기 사정 잘 모르는 모양인데 제주는 한 집 건너면 다 친족이고 사돈이야. 그걸 모르고 함부로 기사 쓰다가 애먼 사람 다칠까 봐서 노파심에서 조언 좀 해주려고 찾아온 거니까 고깝게 생각 말고 새겨듣게."

용찬은 이 자가 정보계통에 있으면서 두목회의 누군가와 연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친척이라고는 했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 잡아다 혼을 내겠다는 협박으로 들렸다.

좁은 지역사회에서는 사돈의 팔촌이 다 겹 끈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용찬에게는 사건을 취재하면서 늘 느끼는 멍에였다.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이것저것 재면서 기사 쓰지 않습니다."

"정론직필 다 좋지만, 괸당 간에 피해 끼치지 말라는 말이네. 생각해 보게 자네 동생 병찬이 공무원 아닌가? 자네 때문에 미운털 박히면 승진에도 지장 있단 말야. 여긴 좁은 동네야. 고구마 줄기 하나 잡아 올리면 작고 큰 알갱이들이 우수수 딸려 나오는 조직사회야."

"제 기사와 무슨 관련 있습니까?"

용찬이 마뜩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을 하자 그는 요즘 시국과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한참 불만을 털어놓고는 식은 커피 잔을 비우고 일어났다.



중앙 언론에 하나도 기사가 보도된 다음 날 아침. 전형진은 '장석규 회견에 대한 입장문'을 도청 기자실로 보내 장석규의 발언은 명백한 허위이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불의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지사로 일할 때도 저는 도민만을 바라보았고 제주도의 발전만을 생각하며 불철주야 노심초사로 도정에 임했습니다. 중국 자본을 유치한 것도 제 개인의 뜻이 아니라 당시 국제적인 경제 흐름이나 도내 상황으로 볼 때 외국 자본의 유입이 절실한 시기였고, 정부의 전략 정책을 성실히 이행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주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 역할을 했고, 각종 경제지표에서도 나타나듯이 지금도 제주의 수익 창출에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저보고 땅을 팔아먹었다고 하는데 땅을 중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다고 제가 중국 자본을 유치하면서 사익을 편취한 적이 있습니까? 다 제주의 미래를 위해 한 일입니다.

두목회라는 말은 저도 처음 듣습니다. 제가 지사 시절 저를 도왔던 사람들끼리 제주경제문화연구소를 만들어 제주의 현안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발전을 위한 좋은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이를 도정에 건의한 것을 농단이라고 하는 것은 협치를 부르짖는 현 도정을 불신하고 부정하는 일입니다. 선거 공천과 관련하여 앙심을 품고 사실을 왜곡한 장석규와 가짜 뉴스를 제작한 권용찬을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하겠습니다.'



"자네 어쩌자고 이렇게 일을 벌인 거야?
지금 위에서 자네 잡아오라고 난리야.
여하튼 당장 올라와 해명해. 난 더 이상 실드 치지 못 하겠어."





그러나 전형진의 입장문이 무색하게도 그 다음날 한민족신문에 '하나도 프로젝트 배후 드러나다'란 제목으로 후속 기사가 터졌다. 전형진과 두목회의 발언 녹취록, 전형진이 중국 랴오닝 그룹의 자문위원으로 월급 받은 각종 서류와 북경의 고급 아파트 사진까지 또 하나의 특종이 떴다.



제주시청 앞 광장에서는 '도정 농단 전형진과 두목회 똘만이들 구속하라','하나도 프로젝트 취소하라', '삼미동 강제수용 원천무효' 등의 피켓을 든 시민들이 분노의 소리를 쏟아냈다. 시민단체들은 공동전선을 구축하면서 조직적인 시위를 벌였고 도정을 농단한 두목회 멤버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SNS에서는 나오룡 교수의 인사 전횡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의 글들이 올라왔다.

특채 과정에 뇌물이 오갔다는 얘기, 누구는 전 지사 친척으로 고속 승진했다는 고발성 글들, 그리고 공무원 사회에 전형진 라인을 구체적인 실명으로 고발하는 글들도 떠돌아다녔다. 그 과정에 동명이인으로 엉뚱한 피해를 받는 사람들, 자신은 전 지사 라인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그러나 두목회는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견고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반격을 시도했다. 댓글을 통해서 글을 올린 자들을 원색적으로 비방하기 시작했고 권용찬과 해당 신문사 기자, 장석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권용찬의 사무실에는 사실을 확인하는 전화에서부터 협박하는 전화까지 쉴 틈 없이 벨이 울렸다. 용찬을 찾는 웬만한 전화는 부재중이라며 오 양이 차단했다. 그러는 중에 국장이 휴대 전화로 용찬을 불러냈다. 부지런히 울리는 벨소리가 사라지자 대뜸 화부터 냈다.

"자네 어쩌자고 이렇게 일을 벌인 거야? 지금 위에서 자네 잡아오라고 난리야. 여하튼 당장 올라와서 해명해. 난 더 이상 실드 치지 못하겠어."

전화를 끊고 나니 허탈감이 몰려들어 맨 정신으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점심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용찬은 사무실 뒤편에 있는 단골 식당으로 가 늦은 점심 대신 소주를 시켰다. 웬만해서는 낮술은 피하던 용찬이었다. 퇴원하면서 의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입원 초기보다 수치가 많이 좋아지긴 했습니다만 아직도 높은 편입니다. 간염이 완전히 치료된 건 아니니 약 먹는 거 게을리 마시고 술은 끊으셔야 합니다."

용찬은 의사의 말에 반항하듯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술을 안 먹으면 돌아버릴 것 같은데 어쩌라구?"

빈 속에 소주 몇 잔을 털어 넣으니 정신이 알딸딸했다. 술이 많이 약해졌다고 생각하며 두 병째 뚜껑을 따고 술잔을 채우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용찬을 불렀다.

"형!"

돌아다보니 집안의 경조사 때 아니면 좀처럼 만나기 힘든 동생 병찬이었다. 그는 앞자리에 앉으며 대뜸 용찬을 걱정했다.

"형. 괜찮아?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니. 어렇게 아고?"

용찬은 혀가 좀 꼬인다는 생각을 했다.

"응, 출장 왔다가 오랜만에 형 얼굴도 보고 싶어서. 사무실에 들렀는데 여기 있을 거라고 알려줬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병찬의 얼굴은 속이 안 좋은 사람처럼 구겨져 있었다.

"형. 웬 낮술이야? 지난번 입원했을 때 어머니가 간 안 좋다고 걱정을 하시던데."

"괜찮아. 내 몸 내가 알아서 하니까. 헌데 진짜 여기 온 목적이 뭐야?"

용찬이 다그치자 병찬은 머뭇거리다가 용찬이 따라 놓은 술잔을 가져다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용기 내어 말했다.

"형은 능력이 되니까 서울 가서 공부도 하고 신문사 취직도 했잖아. 헌데 난 지방 대학 졸업하고 몇 수를 해서 겨우 공무원이 된 거야."

병찬은 충분히 육지서 대학에 붙을 정도의 실력은 되었지만, 어머니가 벌어오는 물질 수입으로는 육지로 유학 가기 어려운 처지라는 것을 알고 제주에서 대학을 다녔다. '굽은 나무가 산(산소)을 지킨다'는 속담처럼 병찬은 어머니 곁에서 집안의 궂은일을 도맡아서 해왔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그간 용돈도 변변히 주지 못한 형의 입장이고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용찬은 그런 생각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술잔을 채우고 목을 젖혀 단숨에 비워냈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뜨고 술잔이 부숴져라 탁자를 치며 큰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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