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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녀를 말하다
[한국 해녀를 말하다 3부] (10)중국 다롄시 제주해녀 발자취 채록
사라져 가는 출향해녀 흔적… 발자취 기록 사업 절실
이태윤 기자 lty9456@ihalla.com
입력 : 2019. 12.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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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40년대 제주 해녀들
다롄서 원정물질 기록 있지만
흔적 없어… 사실확인 어려워
취재팀 다롄시 직접 찾아
발자취 탐사 취재 진행
뤼순커우 지역 현지 노인 증언
“과거 아시아 여성들 물질 기억해”


'제주풍토기'에는 일제강점기 제주 해녀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러시아 등 해외로 진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현재 제주풍토기에 남아 있는 기록과 관련해 증언해줄 해녀와 관계자 등은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으로, 제주 해녀의 해외진출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수십 년 전에 채록된 기록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본보는 올해 중국 다롄(大蓮)의 출향해녀의 발자취를 채록하기 위해 발자취 탐사 취재를 진행키로 했다.

다롄도서관 전경

제주풍토기·도내 기록 등에 따르면 제주 해녀의 출가는 19세기 말 일제의 제주어장 침탈로 해산물 채취량이 급격히 줄어들자 제주 해녀들이 다른 지역으로 물질을 나가면서 시작됐다고 알려졌다. 해녀들의 진출지역은 한반도 남부에 머물지 않았고 한반도 북부 지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의 다롄과 칭다오(靑島),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반경을 넓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1930~1940년대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 출신의 김응수가 제주 해녀 20여 명을 인솔해 다롄으로 향했다는 내용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었고, 취재팀은 다롄으로 원정물질에 나섰다는 제주 해녀의 대한 내용을 보다 자세하게 듣기 위해 김응수의 고향 대평리의 어촌계에 문의했으나, 별다른 정보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롄 현대박물관의 모습.

본보 취재팀이 다롄 현대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다롄시의 100년 역사 속에서 제주 해녀의 기록을 찾고 있다.

취재팀은 이달초 흔적은 없고 기록으로만 남겨진 다롄 속 제주해녀의 발자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 다롄을 방문했다.

지난 12월 5일 다롄의 지방역사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다롄도서관을 찾았다. 그러나 다롄도서관은 1950년 이전의 기록들을 모두 상부 기관으로 이전한 상태였기 때문에 1930~1940년대에 방문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제주 해녀의 기록을 찾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같은날 다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역사박물관인 현대박물관을 찾아 제주 해녀 발자취 탐사를 이어갔다. 현대박물관은 다롄시 건립 1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박물관으로 다롄의 역사화 변화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유물과 사진이 전시돼 있어 제주 해녀의 기록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으나, 이곳 역시 제주 해녀의 다롄 방문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뤼순커우 수산시장 내부 모습.

뤼순커우 수산시장에서 상인들이 다양한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다롄 뤼순커우 수산시장 인근 해안의 모습.

다음날인 6일 취재팀은 다롄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는 뤼순커우(旅順口) 지역 소재의 한 수산물 시장을 찾았다. 수산시장에는 해삼과 성게를 비롯해 전복 등 다양한 수산물이 판매되고 있었다. 취재팀은 수산시장 상인들로부터 수소문해 뤼순커우 지역에서 머구리(다이버나 잠수부를 일컫는 옛말)를 이용해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는 중국 해남을 만날 수 있었다.

이날 만난 중국 해남에 따르면 뤼순커우 지역에 머구리 작업은 모두 남성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이들은 보통 4인 1개 조로 팀을 꾸려 작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들은 전복과 해삼 등의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는데 해산물의 90% 이상이 양식이다. 그렇지만 중국요리의 최고급 재료로 손꼽히는 해삼은 비록 양식이라도 수요가 많아서 ㎏당 6만~7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해삼인 경우 하루 반나절 정도 잠수부 작업을 실시하면 보통 200㎏을 채취하고 있다.

중국 해남으로부터 뜻밖에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중국 해남들 사이에서 제주 해녀는 강인한 여성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해남 연령층이 20~40대라서 80여 년 전에 제주 해녀가 중국 다롄에서 물질했다는 내용을 알고 있다는 해남은 없다고 전했다.

이 지역 해남들이 해삼 채취를 위해 사용하는 배.

해남들이 채취한 해삼.

다롄 속 제주 해녀 발자취 탐사가 난항을 겪고 있던 중 뤼순커우 수산시장 인근의 행정동사무소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80여 년 전 다롄시에서 물질했던 아시아 여성을 기억하고 있는 노인이 있다는 것이다.

행정동사무소에서 만난 공무원에 따르면 해당 노인은 70~80여 년 전 아시아 여성 10여 명이 뤼순커우 수산시장 근처에서 물질하는 모습을 기억했다. 또 당시 아시아 여성들은 뛰어난 물질 실력으로 중국 해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했지만, 한시적으로 물질에 나선 뒤 지역에서 사라지곤 했다. 또 다른 노인도 과거 아시아 여성의 물질 모습을 기억하지만 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언제까지 물질을 이어왔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주도내 기록에 1930~1940년대 제주 해녀들이 다롄으로 원정물질에 나섰다는 이야기와 뤼순커우 지역의 노인이 기억하고 있는 시기가 비슷하고 중국에서는 여성들이 바다에서 물질을 하지 않는 다는 점을 미뤄보아 뤼순커우 지역의 노인들이 기억하고 있는 물질 실력이 좋았던 아시아 여성은 제주 해녀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본보는 지난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아 출향해녀의 발자취를 추적 취재하고 제주 해녀가 러시아에서 물질했다는 현지 기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국내 언론 최초로 확인 보도한 바 있다.

▶특별취재팀 = 팀장 고대로 행정사회부장, 이태윤기자

▶자문위원 = 양희범 전 제주도해양수산연구원장, 조성환 연안생태기술연구소장, 김준택 제주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조성익·오하준 수중촬영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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