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진의 하루를 시작하며]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

[권희진의 하루를 시작하며]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
  • 입력 : 2019. 12.11(수)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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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은 사실 얼마 전 출판계와 관련 업계를 충격에 빠뜨린 모 전자책 서비스 회사의 광고 카피다. 이번엔 서점 주인이 쓰는 칼럼 제목으로는 매우 아이러니해 보이는 이 제목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이 회사는 회원가입을 하면 정기적으로 물건을 배송 받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소위 구독경제라 불리는 소비 방식을 독서에 적용해 월정액 독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한 달에 1만 원 남짓한 금액만 지불하면 다양한 방식의 독서 경험을 제공받을 수 있는데, '욜로(YOLO)'를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구독경제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만큼 이 서비스에 한 번이라도 가입해서 사용해본 누적 사용자 수는 벌써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런 회사가 최근 종이책 시장으로 진출해 오리지널 종이책 정기구독 서비스를 론칭하며 내세운 광고 카피가 바로 오늘 칼럼 제목이다.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 이제 서재로 가요. OO의 서재!', '어떡하죠? 지금 가는 서점에 이 책은 없을 텐데'라는 글자와 방송에도 많이 노출되어 낯익은 얼굴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책을 들고 있는 이미지가 대문짝만하게 서울 시내버스 외부와 서점 앞 광고판을 장식했다.

1차적인 비판은 광고 모델이 된 작가에게로 향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송에 나와 동네책방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고, 심지어 "독자들이 한 번이라도 서점을 방문할 기회를 만들어드리려는 것"이라 말하며 올해 나온 신간의 동네책방 에디션까지 별도로 출간했었다. 그렇기에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라고 말하는 카피 옆 그의 얼굴은 많은 이들의 실망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당연히 가장 비난받아야 하는 건 자신들의 경쟁자는 오프라인 서점이 아니며 설립 초기부터 서점 및 출판사와 상생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을 지향해 왔다는 바로 이 회사다. 그 정도 규모의 회사에서 이 정도의 베스트셀러 작가를 모델로 기용해 광고를 내걸기까지 그 누구도 이 카피에 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혹은 이것이 그저 최고결정권자의 판단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 도대체 어떤 책을 만들어 팔겠다는 것인가. 이 일이 단순히 매출을 올리기 위한 한순간의 해프닝이 아니라 자신들의 플랫폼에서만 유통할 종이책을 직접 만들겠다고 나서며 일어난 사고라 심각성이 더 크다.

그들이 지금 팔고 있는 상품인 전자책들은 다 어디에서 온 것인가? 결국은 모두 종이책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인데, 서점에서 책을 사지 말라고 하면 출판사 보고 종이책을 만들지 말라는 것과 똑같은 얘기다. 이건 단순히 서점들을 우롱하고 오프라인이냐 온라인이냐의 경쟁 구도로 생각해 나올 수 있는 카피가 아니라 출판부터 유통까지 독과점으로 가겠다는 오만에서 나온 발상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러 비판 속에 즉각 광고를 중단하고 사과의 뜻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하긴 했지만, 수십 년을 피땀 흘리며 쌓아온 출판사들의 노하우가 집약된 종이책과 출판 생태계를 자본 논리로 한순간에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아버린 그들의 광고는 업계에 큰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그들이 부디 출판업계에서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돈을 생각 없이 쓰지 말기를 바란다. <권희진 디어마이블루 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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