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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희의 백록담] 추사 유배지 명칭에 ‘대정’이 빠진 이유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9. 12.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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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을의 풍토는 또 하나의 유별난 곳으로 하나하나 매우 달라서 까딱하면 탄식하고 놀랄만 하나 모두가 볼만한 것이 없다. 기후가 겨울철에도 때로는 따뜻하고 여름철은 간혹 서늘하나 변화가 무쌍하고, 바람과 공기는 따뜻한 것 같으나 몸에 와닿기는 살을 에는 듯 하고, 의복과 음식을 조절하기 어려워 병이 나기 쉽다."

조선 중종대의 충암 김정(1486~1521). 충암은 기묘사화에 얽혀 1520년 8월(음력) 제주에 유배돼 이듬해 10월 사약을 받아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인용문은 그가 쓴 '제주풍토록'의 도입부로 유배인의 심경이 더해져 제주살이가 처절하게 그려졌다. 유배인들에게 제주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절로 한탄하게 하는 섬이었고 토착민들에겐 차고 넘치는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고된 땅이었다.

약 500년이 흐른 지금의 제주는 어떤가.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이던 유형에 처해진 '육지 사람들'을 가두던 섬은 어느새 '자발적 유배'란 말을 당당히 입에 올리는 이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었다. 근래의 개발 지형이 그같은 '유폐'를 허락하지 않고 복작이는 도시를 닮아가고 있지만 바다 건너 다다르는 제주에서 낯섦을 발견하고 삶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발길이 끊긴 건 아니다.

일찍이 유배를 문화 자원으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제주 예술인들로 구성된 제주예총은 1982년 유허비만 있던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 초가를 복원하는 등 오늘날 제주추사관을 낳는 계기를 만들었다. 제주예총이 제주 예술가인 현중화·변시지 작품 등을 판매해 조성한 기금에 지자체 예산이 더해지며 1984년 추사유물전시관이 들어섰다. 추사유물전시관은 2007년 유배지가 국가 사적으로 승격된 이후 그 격에 맞게 시설을 보강해야 한다며 지하 2층, 지상 1층 규모로 새로이 지어져 2010년 5월 개관했다.

제주추사관을 기점으로 제주 유배문화에 대한 관심이 이어져오고 있는 때에 일각에서는 그 일대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 명칭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배지 대정'의 존재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정현은 조선시대 세 고을 가운데 제주목, 정의현에 비해 정치적 중죄인의 유배지로 여겨졌다. 한양에서 볼 때 제주목보다 더 먼 곳이 대정현이었기 때문이다. 문화재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이들은 유배지의 특성과 추사가 9년 가까이 머물던 점을 고려할 때 '대정'이란 이름을 넣어야 외로움이 낳은 예술적 성취의 배경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다고 본다. 메마르고 거친 필치로 표현된 화면에 담긴 차갑고 황량한 분위기의 '세한도'를 떠올려 보자. 따스한 남국이 연상되는 서귀포와는 거리가 느껴진다. 추사는 대정현의 세찬 바람을 견디며 훗날 국보가 된 그림의 영감을 얻었던 것은 아닐까.

'서귀포 유배지'란 작명을 두고 국가 문화재로 지정될 무렵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며 '남제주군' 지명이 지워진 탓에 대정이라는 지역의 특수성마저 희석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을마다 품은 개성과 정체성이 경쟁력인 시대에 대정고을 사람들이 넘어온 세월의 파고를 다 같이 기억할 수 있는 이름 하나쯤 가져야 되지 않을까 싶다.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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