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정의 목요담론] 지금 위정자에게 요예(要譽)가 필요한 때

[오수정의 목요담론] 지금 위정자에게 요예(要譽)가 필요한 때
  • 입력 : 2019. 11.21(목)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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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을 읽다보면 요예(要譽)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명예를 구한다'는 뜻이지만 당시 위정자들 사이에서 평가되던 요예는 가히 긍정적이지 못했다. 요예는 통상 수령의 역할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다. 수령이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통치지침보다는 백성을 위한다는 핑계로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풀고 은혜가 아래로부터 나오게 하는 행위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지방에 부임한 수령들은 상부로부터 평가를 받게 되는데, 지역민들의 칭송이 평가에 관건이 됐다. 칭송을 얻는 길은 소송을 신속·공정하게 처리하고, 불필요한 재정을 줄이며, 기근을 구제하고, 세금 감면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평가 수위가 달랐고, 백성의 입장에서 볼 때 선정(善政)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특히 17세기 양란 이후 늘어난 세금은 지역민들에게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 왔고 수령이 이를 해결해 줄 때 칭송으로 왕조에 전달됐다. 수령의 순수한 선정으로 베푼 사례도 많았으나 조선후기로 올수록 폭정을 일삼고도 부임지를 떠날 때는 선정비를 강요했던 부정적인 의미도 있었다. 그래도 지역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요예 역시 열악한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한 생존의 수단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왕조의 입장에서 보면, 요예는 백성의 요구에 대한 수용적 의미도 있지만, 수령의 교섭능력에 따라 조세 경감에 대한 변통이 가능했다는 점을 볼 때 비판적인 의미가 앞섰다. 기저에는 국가 재정의 곤란을 낳게 하는 상호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요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풍수재해에 따라 중앙에 재난지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한다던가, 2020년 21.7%의 역대 최고의 사회복지예산을 확보했다는 등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는데, 법적인 규정과 규범을 통해 요예를 공식화했다는 것이 과거와는 다름을 볼 수 있다. 즉 국민이 낸 세금을 가지고 취약계층이나 기반시설로 사회에 재분배 되는 것 또한 과거에는 수령의 재량권이 높았다면, 현재는 정부의 법적 테두리 내에서 요예가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일수록 정책의 소통과 예산의 재분배를 통한 직·간접적으로 지역민이 상생의 측면에서 요예가 요구되는 시대가 됐다. 최근 제주에서는 제2공항, 동물테마파크, 곶자왈에 들어서는 사파리월드, 송악산 유원지 등 각종 개발사업들이 들어서는 족족 갈등의 불씨로 피어나고 있다. 이에 행정은 국제자유도시에 걸맞는 투자유치를 통해 일자리 창출, 세외수입 확대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고 있지만, 개발 사업이 허가되는 지리적, 지형적인 자연적 요건에 대해 지역주민들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과거 요예의 재량권은 임금의 권한을 위임받은 수령의 특권이었다. 현재는 특별법에 위임 받은, 지방분권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지사의 몫인 것이다. 명예를 구한다는 것은 도민에게서 얻는 것임을 볼 때 지금의 지사는 도민에게서 명예를 구하기 위한 노력은 하는지 궁금하다. 또한 행정집행 위정자로서 난무하는 갈등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쳐다보는 모습은 직접 귀 기울여 소통해 가려운 부분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앞선다. 이제는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한 지역주민들과의 갈등 속에서 도민을 위한 요예를 펼칠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오수정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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