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학교] (7) 애월중 '책과 함께한 여행'

[책읽는 학교] (7) 애월중 '책과 함께한 여행'
수업에 녹아든 독서교육, 배움의 깊이를 더하다
  • 입력 : 2019. 11.19(화)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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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중 3학년 독서 중심으로 5개 교과 주제 통합수업
함께 읽고 생각하고 체험하며 평화·인권 가치 되새겨
"학교 밖 사회와 연결… 타인의 고통 공감할 수 있길"


애월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올해 '특별한 수업'을 했다. 그 중심엔 독서가 있다. 국어 시간에 장편 소설 하나를 긴 호흡으로 찬찬히 읽고 그 얘기를 따라 역사와 영어, 음악, 미술 속으로 들어갔다. 책 한 권, 하나의 주제를 5개 교과 수업에서 만나는 일은 독서의 깊이를 더했다. 전에 없던 경험이었다.

이는 교사들에게도 첫 시도였다. 독서를 중심으로 한 5개 교과의 주제 통합 수업을 위해 지난 겨울방학 워크숍을 통해 미리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짜인 주제는 '역사의 길에서 삶의 길을 찾다'. 독서와 여러 개의 교과교육을 연결해 생각을 넓히는 데 중점을 뒀다.



#수업에 녹아든 독서교육, 생각을 키우다

수업 안에서의 책 읽기는 속도를 늦추고 함께 읽고 생각하고 체험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예전 같으면 일주일이면 끝났을 국어책 속 한 단원을 한 달 가까이 이었다. '책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단원의 의미도 살렸다. 책을 읽고 그 이야기를 따라 여행하기 위해 3학년 모든 학생이 같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제주4·3-광주5·18 연계 평화인권 역사탐방에 나선 애월중학교 학생들.

함께 읽은 책은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였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학생과 주변 인물,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내면을 그려낸 이 책을 국어 수업시간 여섯 시간에 걸쳐 끝까지 읽어냈다. 한 해 전 제주4·3을 다룬 현기영 작가의 '마지막 테우리'를 읽고 소설의 배경이 된 오름을 올랐던 학생들이 이번엔 제주 밖 광주 5·18 이야기를 마주한 것이다. 거기엔 비슷한 아픔을 통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생각해봤으면 하는 교사들의 바람이 담겼다.

애월중 부인식 국어 교사는 "광주 문제도 제주4·3과 연결된다고 생각해 이를 하나로 묶어 평화와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했다"며 "책 밖 사회, 현실과 연계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다같이 읽은 소설 속 이야기를 매 수업마다 다양하게 만났다. 역사 시간에는 책에 담긴 역사적 사건을 들여다보고 미술 시간에는 저마다의 독서 감상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음악 시간엔 5·18의 상징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보고 영어 시간엔 영화 '레미제라블' 속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담은 영어 노래를 우리말로 바꿔보기도 했다. '역사의 길에서 삶의 길을 찾다'는 큰 주제로 5개 교과서가 분주히 연결됐다.



#평화·인권 가치 되새긴 책과의 여행

책과 함께한 여행은 소설의 배경이 된 광주로 떠났다. 지난 5월 23~24일 1박2일 일정으로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금남로 등 사적지를 둘러봤다. 책 속 이야기를 연극과 뮤지컬로도 만났다.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추모 글을 쓰는 학생들.

울림은 컸다. 여행 전에 5·18 당시 희생된 학생 운동가에 대한 정보 탐색 활동까지 마쳤던 학생들은 당시 제 또래가 겪어야 했던 고통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부 교사는 "5·18묘지를 참배할 때 아이들이 직접 검은 옷을 챙겨 입고 추모의 글을 쓰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숙연했다"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을 잃어버리는 요즘, 힘든 곳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해 마련한 프로그램이 무늬만 수학여행이 아닌 진짜 수학여행이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함께 책을 읽고 여행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그 이야기를 마음 깊이 남겼다. 책을 의미 있게 읽는 또 다른 방법도 깨닫기도 했다. 애월중 3학년 강민지 학생은 "수업시간에 책을 읽고 그 배경이 된 장소를 찾아가 보니 그 내용이 더 오래 남는다"고 했고, 김수영 학생은 "사람들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자유의 뒤에 많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예인 학생은 "독자가 그 시절로 가보지 않는 이상 책과 독자 사이엔 하나의 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수업을 통해 그 벽을 허물지 않았나 싶다"며 "예전에는 단순히 재미를 찾아 책을 읽었는데 이제는 메모도 하고 배경이 된 곳을 찾아가보는 데 재미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왜 책인가?] 애월중학교 교사 부인식


교과 수업 속에서 독서하기


수많은 사람들이 청소년기에 양서를 읽어야 함을 주장한다. 학교에서도 많은 선생님들이 틈만 나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의 독서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열린 애월중학교 독서캠프.

좋은 책에 대한 접근성이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통해 삶의 지혜를 성찰하고 지식과 정보를 얻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인다. 되돌릴 수 없는 디지털 시대의 폐단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독서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보람이 너무 크기에 이 문제를 외면할 수도 없다.

과거에 학교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 독서에 대한 정보의 공급원이었다. 학생들은 이 정보를 이용해 스스로 양서를 찾아서 읽었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는 정보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에만 머무를 수 없다. 온갖 정보화 기기의 그물에 사로잡혀 독서할 시간을 다 빼앗기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독서삼매경에 빠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다. 그러므로 학교는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독서 경험의 장을 마련해 줘야 한다.

독서 경험은 학교의 교과 수업 시간을 활용할 때 가장 효율적이고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일이 바로 교실 수업이기 때문이다.

교실 수업에서 이루어지는 독서를 '교과 독서'라 부른다. 특정 교과의 교육과정을 면밀히 분석한 후 교과교육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집중 독서용 도서를 선정해야 한다. 선정 과정에서 충분한 시간과 성찰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한 가지 주제를 비교적 긴 분량으로 다루어진 책을 반드시 교과 수업 시간에 누구나 끝까지 완독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이 책을 학년 전체 학생이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자아와 세계에 대한 인식의 폭과 깊이가 확대되고 심화될 수 있다. 이것이 학교 독서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이다.

학교는 누구나 자신의 속도로 읽고, 질문하고, 성찰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교과교육과 독서교육의 화학적 결합을 지향해야 한다. 아이들이 책 속에서 재미와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학교 독서교육의 방향을 '교과독서'로 전환해야 할 때다. 김지은기자

※이 취재는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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