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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34)취우(翠雨) (정찬일)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9. 11.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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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맞습니다. 누가 급히 흘리고 갔나요. 밑돌 무너져 내린 잣담에서 밀려나온 시리 조각. 족대 아래에서 불에 타 터진 시리 두 조각 호주머니 속에서 오래도록 만지작거립니다. 손이 시린 만큼 시리 조각에 온기가 돕니다. 온기 전해지는 길에서 비 젖는 댓잎 소리 혼자 듣는 삼밧구석입니다. 푸른 댓잎에 맺힌 빗방울 속이 푸릅니다.



이 봄비 그치면 취우 속에 가만히 들어 한 밤 한 낮을 꼬박 잠들겠습니다.



매 순간 모든 것이 흔들리고, 빛 속에 숨었던 얼굴들 다 드러나고, 누구도 내 모습을 보지 못하고, 진저리치는 생으로 불거진 물집 하나 서러운 적요로 붉게 물든 열매 하나조차도 투명하게 사그라지는



내게 와서 내가 되지 못한 눈빛들이, 돌을 뚫고 깨부수던 말들이, 견고한 나무의 길로 위장했던 내 비린 상처들이, 어둠을 혼자 견뎌내던 새들조차도 흔들리며 다 흩어지겠습니다.



이 봄비 그치면 취우 속에 가만히 들어 몸으로 번지는 비취색 나뭇잎 하나 배후로 삼아 한 밤 한 낮을 꼬박 잠들겠습니다. 단 한 번도 따뜻한 적 없는 시리 조각에 잠겨 한 밤 한 낮을 꼬박 잠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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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 시리 두 조각, 긴 세월 지나도 맞붙이 치는 소리 잇몸 시리게 쩡쩡거립니다. 이 봄비 그치면 취우 속에 가만히 들어 한 밤 한 낮을 꼬박 잠들겠습니다.

잃어버린 마을 '삼밧구석'의 아픔을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치유의 고장임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주먹을 쥔 결기와 투쟁적 언어로는 역사를 어루만질 수 없다. 취우(翠雨)는 푸른 잎에 매달린 빗방울이다. 곧, 여름비, 녹우(綠雨)를 말한다. 시리는 '시루(떡이나 쌀 따위를 찌는 데 쓰는 둥근 질그릇)'의 방언(강원, 경상, 전남, 제주)이다.

안덕면 동광리는 무동이왓, 조수궤, 사장밧, 간장리, 삼밧구석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중산간 마을이었다. 삼밧구석은 삼을 재배하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4·3당시 46가호의 주민들이 거주하던 임씨 집성촌이었다. 1948년 11월 중순 이후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이 이루어지면서 마을은 모두 파괴되었으며 주민들은 12월경 큰넓궤로 숨어들어갔다. 굴은 토벌대에 발견되고 주민들은 영실 부근 볼레오름까지 갔다가 죽거나 잡혀갔다. 잡힌 사람들은 서귀포 단추공장에 수감되었다가 정방폭포에서 집단 총살됐다. 1947년 8월 '보리 성출반대사건'이후 미군정의 주목을 받았던 삼밧구석은 대량학살의 현장이 됐다. 마을로 돌아간 사람들 역시 잠복학살(생화장) 당한다. 마을 입구에는 4·3사건위령비가 세워져있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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