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와 문학] (26)오승철 시 '개닦이'

[제주바다와 문학] (26)오승철 시 '개닦이'
"장끼우는 날, 다닥다닥 한을 긁다"
  • 입력 : 2019. 10.25(금) 00:00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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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미리 바닷가. 오승철 시인의 개닦이 는 바다에서 스러져간 이들의 사연에 꿩 소리로 묘사된 4 3의 상처가 포개진다.

고향 마을 뱃사람들 희생
칠월 초닷샛날 출어 중단
4·3 비극 꿩 울음에 닿아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뜻하는 '개'. 여기에서 파생된 듯한 개닦이에 대해 시인은 이런 설명을 달았다. '해녀들이 각종 해조류가 돋아날 수 있도록 1년에 한 두 차례씩 갯바위의 잡풀과 바위부스러기 등을 호미로 긁어 닦아내는 작업.' 그의 시는 개닦이를 하는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제주도의 젊은 시인'으로 소개되며 1988년 발간된 오승철 시인의 첫 시집 '개닦이'다.

'돌상 무렵 내 고향은/ 바다에도 아니 든다.// 해마다 칠월 초닷샛날은 수평선만/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물 봉봉/ 드는 바닷가,/ 돌아오지 않는 주낙배들.'('개닦이·2' 전문)

그가 태어난 곳은 서귀포 위미리. 시인의 고향 마을에선 7월 초닷샛날 이승을 뜬 어부들에 대한 애도의 뜻과 해신(海神)에 대한 두려움으로 출어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기잡이 나갔던 배들이 포구를 지척에 두고 해일을 만나 침몰하면서 한꺼번에 익사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를 발표할 때 30여년 전이라고 했으니, 아마 1950년대 쯤에 벌어진 일 같다. 그 사고로 이날 하루에만 위미리의 제사집은 19군데나 된다.

'바다도 지우지 못한 슬픈 마을'의 사연은 위미리에 피어나는 동백꽃에 내려 앉는다. '남제주군 남원읍 위미리 곤냇골, 지는 꽃의 설움에 깔리는 노을// 바닷가 뉘 무덤가에 이르러/ 내 목빛도 붉어라.'('섬동백·3' 중에서)며 속울음 우는 바닷가 마을의 풍경을 그려놓는다. 낭만과 거리를 두고 있는 그의 바다는 꿩 소리와 연결되며 또다른 죽음을 불러낸다. '먼 산 장끼가 우는 날이면, 갯바위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늙은 해녀들의 눈빛 속에서 잡풀이며, 바위부스러기며, 무성한 한이며, 아무데나 긁어내는 칠월의 하루 해만 길어라.// 한평생/ 자맥질에도/ 못 다 재운 호미 끝.'('개닦이·1' 중에서)

시인은 온 몸으로 우는 장끼를 두고 4·3사건의 총성에 놀란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바닷가나 귤밭, 무덤가 등 무심결에 들리는 장끼 울음처럼 시집에 실린 80편의 시 중에서 15편에 꿩 소리가 머문다. '위미리 소고·4'에 묘사했듯, 콩밭에 숨어살다 불탄 초가를 뒤로 하고 아우성 속에 잡혀가던 아버지가 있었다. '사람도 놀라고 꿩도 놀라, 말 그대로 아비규환'(정인수)이었으리라.

시인은 이 시집 '자서(自序)'에서 '장끼가 우는 날은 나의 시도 운다'고 적었는데 그 울음은 아직 멈추지 않고 있다. 얼마 전 고산문학대상을 받은 근작 '오키나와의 화살표'에도 꿩이 있었다. 4·3의 비극을 은유해온 꿩 울음소리는 식민지와 분단이 낳은 이산과 유랑, 학살을 견뎌야 했던 우리 민족의 영혼과 한에 대한 상징으로 승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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