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5)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5)
  • 입력 : 2019. 10.24(목) 2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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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12-3. 괸당들이 사는 법



"곶자왈이라도 골프장 들어선 곳도 있어요. 그런데 부근에 있는 지역 도의원 땅은 건축허가까지 나서 팬션을 짓고 있어요. 그 주변 땅 지주들을 보면 전부 지역 유지나 고위 공무원 출신 등 토호세력들이에요."




정 회장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게 40년이나 되는 오래 전 이야기에요. 그런데 10여 년 전에 제주에 들어와 개발하려다 보니 내 땅을 몇 사람이 허락도 없이 경작하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조부 때부터 경작하던 땅이라고 내놓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재판까지 걸었어요. 헌데 그들이 재판에 질 것 같으니 그때야 사정을 하는 거예요. 당시 토지 재측량법이 시행되고 있으니 구부러진 땅을 측정해서 재획정 하재요. 하도 사정하는 바람에 그래 어울리며 살자고 요청을 들어줬죠. 미래를 생각해서 내 돈 들여 반듯하게 재획정하고 이천 평을 내어 길을 만들어 맹지까지 풀어주고 무상으로 기부채납 했어요. 그런데 내 땅 중앙에 딱 2평 알박기 한 땅이 있었어요. 원래 산소 자리였는데 이전해간 자리를 산 거지요. 그 주인이 대학교수였는데 어디서 개발 정보를 미리 알아내고 땅을 당시 평당 만 원에 구입했답니다."

삽화=고재만 화백



"그 주인 이름 아세요?"

"여창희라고 전 지사 괸당이라고 합디다."

용찬은 그가 좀 전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했던 여창희라는데 놀랐다.

"그래서요?"

"그걸 열 배 줄 테니 팔라고 해도 요지부동이었어요. 할 수 없이 평당 1억 씩 주고 매입했어요. 헌데 작년인가 농경지였던 땅을 자연녹지로 형질을 변경해버린 거예요."

"이유가 뭡니까?"

"삼미동이 개발되고 땅값이 오르니 내 땅을 헐값에 먹으려는 짓 아니겠어요? 아니 수질이 4급이던 곳이 어떻게 갑자기 2급으로 변합니까? 따졌더니 거기는 곶자왈이 있어 개발이 안 된다는 거예요. 헌데 가보면 아시겠지만, 아스팔트 도로가 깔린 곳인데 어찌 곶자왈이라고 하는지? 곶자왈이라도 골프장 들어선 곳도 있어요. 그런데 더욱 억울한 것은 부근에 있는 지역 도의원 땅은 건축허가까지 나서 펜션을 짓고 있어요. 그 주변 땅 지주들을 보면 전부 지역 유지나 고위 공무원 출신 등 토호세력들이에요."

"그들은 되는데 왜 정 회장님만 안 된다는 겁니까?"

"담당 고위공무원이 총대를 맨 것 같아요. 그가 지사 직계 라인이라고 하는데 실력자래요. 국장을 찾아가 설명을 해도 나를 악덕 투기꾼으로 몰아붙이며 막무가내에요. 그래서 도의회 자연환경위원장에게 후원금을 내고 찾아갔는데 솔직하게 담당 국장과 동기동창이라 난처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도지사를 찾아갔죠. 헌데 도지사도 국장과 통화를 하더니 중산간 녹지 보호 때문에 안 된다고 환경단체 핑계를 대더라고요."

자연환경위원장 서길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법으로 해결하시면 되잖아요?"

용찬의 말을 듣던 정 회장은 한숨을 내쉬더니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권 기자님, 제주 분 아니세요?"

"맞습니다만 무슨 일입니까?"

"그럼 괸당 문화라고 아시겠군요. 끼리끼리 다 연결되어 있어요. 재판을 걸었죠. 헌데 더 참담한 건 변호사를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어떤 변호사는 도의 자문변호사라서, 어떤 변호사는 도의 담당국장과 인척간이라서, 도와 싸워서 이겨도 실속이 없다는 등 회피하는 변호사가 많았어요. 겨우 외지에서 온 변호사를 구하긴 했는데, 헌데 이번엔 법원에서 공판을 차일피일 미루는 거예요. 제주도를 상대로 하는 싸움에 모종의 압력이 있는 게 분명해요. 현장에 가보면 정말 개발 불가 지역인지 아닌지 단번에 알 수 있는데 말이죠."

"어떻게 하실 겁니까? 상황이 이런데 마냥 1인 시위만 하실 겁니까?"

"저들 속셈이 삼미동처럼 헐값에 토지를 수용해서 중국놈들한테 팔아먹으려는 수작인데 내가 넘어갈 것 같아요? 기자님, 제발 이거 여론화 시킬 수 있는 기사 좀 써 줘요. 지방 신문, 방송국들 찾아가 봤지만 모두 고개를 저어요. 중앙 언론에 내주기만 하면 쉽게 풀릴 거고, 그 은혜 잊지 않을게요. 정말 빽 없고 줄 없는 게 너무 억울합니다."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용찬은 괸당 문화라는 것이 중국의 ㅤㄲㅘㄴ시(關係) 문화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용찬이 괸당 문화 폐해의 사례로 기사를 써서 데스크에 올렸으나 지역감정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결국 기사화되지 못했다.



대호와 약속한 날 저녁 용찬은 '비즈니스 룸 베이징'을 찾아갔다. 이른 시간이었는데 복도에서 비틀거리는 손님과 마주쳤다. 그런데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 용찬은 그가 대뜸 마약에 취했다는 걸 알았다. 그는 대뜸 용찬을 바라보더니 알 수 없는 중국어로 소리쳤다. 아마 용찬을 종업원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소란스런 소리를 듣고 종업원이 달려왔다. 중국어로 취객을 달래며 방으로 안내하고 나왔다.

"잠시만 요"

그러더니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 연락했다. 말하는 내용으로 봐서 초저녁부터 아가씨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저 사람들 소란을 피워도 내칠 수 없는 이유가 VIP 손님이기 때문이죠. 돈을 물 쓰듯 쓰는 호구에요. 이해하세요. 손님 만나기로 하셨죠?"

그는 먼저 와서 기다리는 대호가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고 나가자, 대호가 용찬에게 윙크하며 공구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잠시 후에 웨이터가 들어와 술과 안주를 놓고 갔다.

용찬이 휴대폰에서 뉴스를 보며 두어 잔 마실 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정소영이 평상복을 입은 채 들어왔다.

"어머, 미리 전화라도 좀 하시지.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하다가 급하게 뛰어 왔잖아요."

"이쁘게 화장까지 했네. 오랜만이야."

"둘이라더니 왜 혼자에요?"

용찬이 당황하며 둘러쳤다.

"화장실에 갔어."

"화장실은 이 안에도 있는데?

용찬은 말이 헛나간 것을 감추려고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나 몰래 전화라도 할 일이 있었나?"

정소영이 다가와 용찬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더니 가볍게 키스를 했다. 용찬이 돌발적인 상황에 어리둥절하며 허리를 감싸 안는데 그녀가 몸을 빼더니 곱게 눈을 흘겼다.

"잠깐만 기다려요.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정소영이 나가자 용찬은 지난번 코코의 몸매가 생각났다. 정소영을 안은 감촉으로 봐선 그녀보다 가슴은 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해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용찬은 머리를 저으며 자신이 여자의 가슴에 신경을 쓰는 게 모정 결핍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웨이터의 하얀 와이셔츠는 흥건히 피에 물들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금산이 소리쳤다.

"야 임마. 여기가 어디라고 피 튀기며 지랄이야?




위스키 한 잔을 목으로 넘기는데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면서 대호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형, 술은 다음에 마시면 안 될까?"

"무슨 일인데?"

"복도에서 고등학교 때 여자 친구를 만났어."

대호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여기서?"

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좋아했던 첫사랑인데 이런 곳에서... 나 도저히 여기서 술 못 마시겠어."

용찬은 대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다른 곳에 가서 한잔 하자."

용찬이 일어서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정소영이 왕금산을 안내하며 들어왔다.

"여! 권 기자 여긴 어떤 일이지?"

뜻밖에 나타난 금산을 보고 용찬이 놀라며 정 마담을 쳐다보았다.

"회장님이 권 기자님 친구라면서..."

금산이 다가서며 용찬의 손을 마주 잡았다.

"뭘 그리 놀라나? 여기도 내 업소야. 합석해도 되지?"

그는 대답도 듣기 전에 거드름 피우며 안 자리를 차지하여 앉았다. 그의 옆에 정 마담이 안자 대호가 용찬에게 곤란하다는 눈치를 주었다.

"그렇게 바쁘면 먼저 가."

"형. 그럼 나중에 봐."

대호는 말을 마치고는 금산의 시선을 피하며 황급히 방을 나갔다.

"누구야?"

"응, 고향 후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다시 노크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리며 용찬을 안내했던 웨이터가 들어왔다. 열린 문 사이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마담. 일이 생겼어요."

금산이 미간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무슨 일이야."

정소영이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여는데, 키가 자그마한 웨이터가 피가 새어 나오는 복부를 움켜쥐고 들어와 쓰러졌다.

"마담, 엠뷸런스 좀...."

정소영이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휴대폰을 드는데, 금산이 느긋하게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마담, 일 처음 해?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일 똑바로 해."

정소영은 금산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휴대폰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죄송합니다."

웨이터의 하얀 와이셔츠는 흥건히 피에 물들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금산이 소리쳤다.

"야 임마. 여기가 어디라고 피 튀기며 지랄이야?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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