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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장편 연재/갈바람 광시곡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3)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9. 10.10.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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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12-1. 괸당들이 사는 법



이번 사건도 일을 못 한 중국인이 자신을 고용한 인력회사 대표에게 반환을 요구했으나 회사운영비 등 이것저것 공제한 것을 중간과 말단 관리자에게 변상하라고 떠맡겼다.




'벌써 4월이라니. 새해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용찬은 책상 위 달력을 넘기면서 중얼거렸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를 그렇게 지내다 보니 세월 참 빠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을 나섰다.

용찬이 경찰청 기자실에 도착했을 때 먼저 온 기자들이 브리핑 자료를 보면서 부지런히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다. 용찬이 자리에 앉자 옆자리의 지방신문 윤 기자가 힐끗 쳐다보며 인사를 했다.

"윤 기자. 뭐 좋은 건수 있어?"

용찬이 노트북을 펼치며 묻자 윤 기자는 턱으로 책상에 놓인 보도 자료를 가리켰다. 거기엔 '중국인들 패싸움 살인사건 발생'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시선을 끌었다.

찬찬히 자료를 읽는데 브리핑 담당 간부가 들어와 마이크 앞에 섰다.

"보도 자료에 보다시피 어제 한낮에 패싸움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는 중국 교포인 당 32세 양 모 씨인데 현장에서 즉사했고, 경찰은 현장의 CCTV와 목격자들의 진술을 통해 가해자가 장기 불법체류자인 중국인 탕 모씨 당 29세를 확정하고 수색 중 어젯밤 시내 모텔에서 체포했습니다. 피해자 양 모 씨는 중국인들에게 취업을 알선하는 무인가 인력회사 대표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상입니다."

브리핑이 끝나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패싸움을 벌인 이유가 뭡니까?"

"지금까지 조사 결과로는 인력회사의 주선으로 새우잡이 배를 탔던 중국인들이 힘들어서 도저히 일 못 하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회사로 몰려가 선금으로 낸 소개비를 내놓으라며 난리치는 과정에서 생긴 일입니다."



법무부는 2002년 외국관광객의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지정된 제한 지역에서 비자 없이 30일 간 머무를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무사증 입국은 14억 인구 국가인 중국을 겨냥했으나 도입 초기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한류 열풍이 불면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확산 됐다. 여기에 해외여행 붐이 일기 시작했고 단체관광객 요우커(遊客)가 생기기 시작했다. 2013년 기준으로 중국의 해외여행자는 9천만 명을 넘어섰고,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중국관광객이 해외관광비로 연 1020억 달러(108조 690억 원)를 써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삽화=고재만 화백



그러나 한국에 온 중국 사람들 중에는 쇼핑 등 관광을 목적으로 오는 중산층만 있는 게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해 오는 저소득층도 있다. 이들은 브로커들의 타깃이 되어 무비자로 제주에 들어와 불법 장기체류를 하면서 취업을 했다.

그들은 몇 백만 원의 돈을 브로커에게 내고 제주에 오지만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언어도 통하지 않은 외국에서 브로커가 알선해주는 일자리에만 취업했다. 여자들은 노래방, 식당, 농사 도우미 등이 주 업종이었지만 남자들은 건설 현장이나 원양 어로같이 힘든 노가다(막노동)가 대부분이었다.

일을 중계해 주는 과정에서 횡포가 일어나는데 인력회사는 취업 알선 대가로 계약한 수입의 30%를 선금으로 떼어 간다. 이 30%를 회사 대표가 50%, 중간 관리자가 30%, 그리고 운송 등 말단 관리자들이 나머지 20%를 나누어 가진다. 그러나 몸이 아파서 혹은 너무 힘들어서 현장에 나가지 못하거나 천재지변 등으로 일을 못 할 경우, 이를 돌려받아야 하는데 선금을 반환받지 못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번 사건도 일을 못 한 중국인이 자신을 고용한 인력회사 대표에게 반환을 요구했으나 회사운영비 등 이것저것 공제한 나머지를 중간과 말단 관리자에게 변상하라고 떠맡겼다. 이에 불만을 품고 분노한 관리자들끼리 대낮에 노상에서 칼부림하며 패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살인사건이 난 것이다.



용찬이 기사를 송고하자 데스크에서 전화가 왔다. 무사증 입국으로 인한 중국인들의 행태에 대해 독자들의 관심이 많으니 불법체류 중국인들의 실태를 취재하라는 지시였다. 전화를 받다가 세미나 생각이 났다.

용찬은 사무실 책상 위에서 문대호에게서 받았던 세미나 브로슈어를 찾아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세미나가 한창 진행 중인데 행사장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연단에는 '제주경제와 중국 자본의 영향'이란 현수막 아래 주제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기다란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제주경제환경포럼 사무처장이란 커다란 표지가 붙은 테이블에 앉은 문대호가 보였다. 용찬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는지 눈이 마주치자 대호가 입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발제자는 여창희 교수였다. 그는 원고도 보지 않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중국 자본 유입이 제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경제지표를 그래프로 나타내며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었다.

용찬은 테이블 위에 놓인 세미나 자료를 펼쳐 그의 발제 내용을 훑었다.

'제주에서의 중국 자본의 투자 실태'라는 제목으로 문대호의 토론 자료도 실려 있었다. 용찬은 노트북을 꺼내 주제 발표문의 요지를 정리하며 기록했다.



"문제는 그 중국인 관광객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중국인들은 대규모 여객선이나 항공편으로 제주도에 들어온 후, 중국인 여행사를 끼고 관광을 하게 됩니다."



제주는 자본과 자산이 취약하기 때문에 외자를 유치하여 지역 경제를 발전시켜야 하는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투자가 밑바탕이 돼야 하며, 현 국내 경제에서 마땅한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외자 유치는 제주 발전의 핵심 키워드이다.

이에 제주는 외국자본의 투자 유치로 인해 개발이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외국인 토지소유 비율은 큰 편이다. 제주도내 외국인 토지소유현황을 살펴보면 이전까지 소유면적이 그리 크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2010년을 기점으로 급속히 외국인 소유의 토지 면적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는 외국자본의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2010년부터 도입된 부동산투자이민제의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부동산투자 세 가지로 이민제도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첫째, 국내 체류 중인 전문직 종사 외국인의 학력과 소득 등을 평가하여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자에게 거주ㆍ영주 자격을 부여하며, 둘째, 기업이 필요로 하는 해외 우수 인재를 보다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온라인 사증발급 신청 제도를 도입하며, 셋째, 해외 자본을 적극 유치하기 위하여 부동산투자이민 제도를 도입했다. 법무부는 이 개정으로 인해 검증된 글로벌 고급인력의 국내 정착과 국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외국자본, 특히 중국 자본을 유치하면 그들은 투자에 대한 이윤 창출을 위해 중국 사람들을 더 많이 데려와야 하기 때문에 제주도의 숙박업이나 음식업, 택시, 렌터카 등을 통해 고용 창출과 서민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 결과 중국인 관광객 증가율은 전년 대비 77%에 이르고 숙박, 전세버스, 렌터카 등의 가동률이 급증하고 있으며, 지방세수도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중국인 투자 활성화와 무관치 않다.



주제발표가 끝나고 토론 시간이 되자 장내는 훨씬 활기찼다. 토론자들은 각계를 대표해서 발제자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현장에서 요우커(遊客)를 상대하는 여행사 대표가 맨 먼저 토론에 참여했다.

"교수님의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문제는 그 중국인 관광객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중국인들은 대규모 여객선이나 항공편으로 제주도에 들어온 후, 중국인 여행사를 끼고 관광을 합니다. 관광지는 대부분 무료관광지를 돌고, 식사는 중국여행사 관련 업체나 직영 음식점에서 합니다. 그리고 잠은 중국 자본이 건설한 중국인 리조트나 호텔에서 잡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단체관광객들이 이동할 때 필요한 관광버스마저 중국 자본에 의해 운영되면서, 도로 위까지 중국 자본에 잠식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은 뭡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은 합니다만 행정당국에서 TF팀을 만들어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발제자 여창희는 불리하거나 부정적인 의견에는 구체적 근거도 없이 앞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을 나타냈다.

이어서 시민단체 대표로 나왔다는 좌장의 소개에 이어 문대호의 차례가 되었다.

대호는 언제 그렇게 경제에 관심 가지고 공부를 했는지 질문이 구체적이고 날카로웠다.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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